
‘천재 유격수’라 불렸던 김재호(은퇴)도 기존 유격수 손시헌(은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까지 입단 후 10년 이상이 걸렸다. 2004년 1차 지명을 받는 그는 2014시즌에서야 두산 유격수로 풀타임을 뛸 수 있었다. 2004시즌 주전으로 자리잡은 손시헌이 NC로 이적한 뒤다.
두산 내야는 2000년대 이후 리그 최정상 전력을 지켜왔다. 탄탄한 주전에 기대주들의 성장으로 선수층까지 두터워 타 팀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백업도 다른 팀에 가면 주전을 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김재호도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평가받은 허경민(KT), 오재원 등도 주전으로 뛰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백업으로 뛰어야 했다.
두산이 자유계약선수(FA) 박찬호를 영입하며 내야진에 명품 유격수 계보를 잇는다. ‘포스트 김재호’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두산의 선택은 ‘육성’이 아닌 검증된 자원 영입이었다.
김재호가 커리어 후반에 접어들며 두산은 오랜 시간 ‘김재호 후계자’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4년 부임한 이승엽 감독의 첫 숙제도 ‘주전 유격수 만들기’였다. 두산에는 유망주 안재석, 이유찬 등에 보상 선수로 데리고온 박준영, 박계범, 전민재 등까지 후보는 많았고, 치열한 주전 경쟁이 펼쳐졌다.
40대에 접어든 김재호까지 활용하며 시간을 벌었지만, 100% 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선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김재호가 은퇴한 2025년에도 두산의 고민은 유격수였다. 안재석, 박준순, 오명진 등 재능 있는 내야수의 성장세가 돋보인 시즌이었다. 이번 시즌 두산 유격수 자리에 가장 오래 선 선수는 이유찬(541이닝)이다. 287이닝을 소화한 박준영은 최근 은퇴를 결심했다.
두산은 세대교체 과정 속 확 젊어진 내야에서 수비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격수는 내야진의 사령관 역할을 하는 자리다. 다시 강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유격수가 포함된 센터라인 보강이 가장 중요하다. 젊은 내야수를 내부에서 키워내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유격수는 기량은 물론이고 경험치가 쌓여야 하는 육성이 어려운 포지션이다.
두산은 결국 외부 수혈로 눈을 돌렸다. 일단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는 박찬호는 현재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는다. 유격수로 골든글러브 수상(2024년) 경험도 있다. 기량은 물론 전 경기를 소화하는 유격수로 내구성도 검증됐다.
오버페이 논란도 있지만 수비 안정에 있어서는 박찬호 만큼 좋은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1995년생으로 아직 젊다는 점도 매력이다. 두산은 “박찬호는 리그 최고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 내야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자원”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두산이 수비 리빌딩 중심에 박찬호를 세우는 것을 첫 단추로 발빠른 전력 보강 행보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