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문의 화랑담배] 제10회 김일성 ③ 공산 폭력 조직 마골(馬骨) 무리 생활

2025-11-16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김성주는 아버지가 사망할 즈음 열네 살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 죽음으로 엄마 강반석은 졸지에 과부가 되었다. 동생 철주, 영주와 함께 살아가기에는 환경이 너무 어려웠다. 김성주는 가출했다. 만주 무송 일대를 떠돌던 공산 폭력 조직 마골(馬骨) 무리로 들어갔다. 마골 무리의 두목은 한인 주마골(朱馬骨)이었다. 마골은 자신을 공산 혁명가로 내 세웠다. 김성주의 첫 사회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주 한인사회에 공산주의가 전파된 것은 1920년경이다. 전파 속도가 빨라 1925·26년경이 되면 활동이 매우 왕성해져 있었다. 당시에는 공산혁명을 말하지 않으면 사상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이들이 말하는 공산혁명은 수 명이 패거리를 만들어 무기를 휴대하고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반동분자로 몰아 살해하였다. 이런 횡포는 유행으로 번졌다. 만주 지역 치안을 맡고 있던 중국 동북 정권은 이러한 날강도 행위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절 무송 일대에 거주하는 한인사회를 관리하는 독립단체이자 자치기관은 정의부였다. 정의부에서는 마골 무리의 행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인들의 안녕과 현지 중국인과의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우려하였다. 정의부에서는 산하 무장력 1개 소대 병력을 동원하여 마골 무리를 토벌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소대장은 이종락(李鍾洛)이었다.

이종락이 부하들을 이끌고 무송에 도착하자, 마골 일당은 도주했다. 이때 소년 김성주가 잡혔다. 조사해 보니 정의부 백산학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김형직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당돌했다. 이종락은 김성주를 만주 봉천에 있는 중국인이 다니는 평단학교(平旦學校)에 입학시켰다. 김성주 일생에 큰 변화를 몰고 온 이종락과의 인연이었다. 1927년 봄이었다.

하지만 김성주의 생활은 평단학교에 들어가서도 안정되지 못했다. 외향적이고 거친 성격에다 마골 무리에서의 생활 습관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퇴학당하고 말았다.

한편 김성주 두목 마골은 여전히 공산주의 혁명가를 자처하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마골) 1930년 한인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 독립운동자들과 유혈 투쟁이 벌어지는 광풍이 불 때, 민족주의 국민부 산하 무장단체 조선혁명군 간부 이윤환(李允煥), 김석하(金錫河)를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그로 인해 마골은 1931년 2월 7일 흥경현(興京懸) 나한구(羅漢溝)에서 위 이윤환, 김석하 부하 이진무(李振武)에게 사살되었다.

이진무는 190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4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평안북도 국경 지대에 있던 일본 경찰서를 수시로 습격하여 국경의 흑선풍(黑旋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34년 5월 18일 평양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당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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