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이 아비지 모셔오듯

2025-10-30

지금은, 경주(慶州)다. 오늘(31일)부터 이틀간 세계인의 눈과 귀가 경주에 쏠린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주와 한국의 매력을 세계에 보여줄 기회다. 마침 음식·영화·화장품 등 K무브가 상한가다. 더욱이 90일 평행선을 달리던 미국과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남은 숙제 가운데 하나는 국내 미래 먹거리를 어떻게 지키고, 새로 키워내느냐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 전쟁 중이다. 곧 쩐과 사람의 전쟁이다. 구체적으로는 ‘고급 두뇌 사냥 레이스’다. 기술 선점이 핵심인 만큼 특급 인재를 얼마나 빠르게 많이 유치하느냐가 관건이다. 생존을 위한 경주(競走)가 시작된 셈이다.

백제 장인이 지휘한 황룡사 목탑

APEC 빛내는 800년 전 랜드마크

‘최고급 두뇌’ 영입 교훈 삼아야

판을 깔아준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달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100배(인당 1000→10만 달러) 인상한 게 도화선이었다. H-1B 비자는 전 세계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자를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해왔는데, 트럼프는 자국민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경쟁국들이 이 틈을 조준했다. 영국은 세계 일류 과학기술 전문가에게 비자 수수료를 전면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중국은 이달 초 ‘K비자’를 도입했다. 대학에서 이공계 학위를 받고, 교육·연구 활동에 참여한 젊은 외국인이 발급 대상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국가자연과학재단은 40세 미만 과학자에게 최대 300만 위안(약 6억원)의 정착금을 지원한다. 그러자 자국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실업률이 18.9%인데 내국인을 역차별한다”고 발끈한 것이다.

한국은 고급 인재는 부족한데, 그마저도 외국에 빼앗기는 형편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8월 ‘브레인 투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5년간 2000명, 연평균 400명의 해외 인재(한국인 포함)를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매달 33명쯤이다. AI와 반도체, 2차전지를 포함해서다.

지금까지 성적은 초라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9일 기준 톱티어(F-2)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9명, 가족 포함 17명이었다. 첨단산업 인재 유치를 위해 취업과 거주가 자유롭고, 가족·가사보조인 동반이 가능한 ‘파격 카드’인데, 시행 초기라지만 한 달 1.5명 수준이다. 그래서 “기준을 낮춘 보다 파격적인 영입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중앙일보 10월 17일자 10면〉

그런데 인재 유출은 쓰나미급이다. 최근 3년간 미국 H-1B 비자를 받는 한국인은 연평균 2200명이었다.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입은 -0.04, -0.30, -0.36이었다(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 한 달에 100명이 한국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매달 30명 이상 ‘국적 불문’ 고급 두뇌를 모시고 싶은데, 태평양 건너는 한국인이 100명,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1~2명이라는 얘기다. 인재 유출은 AI에만 한정해서다.

이유는 여럿이다. 연구 환경이나 생활 인프라, 인사·보상 시스템, 언어 소통 등에서 매력이 떨어져서다. 경직된 조직 문화도 ‘머물고 싶은 나라’가 되기엔 걸림돌이다.

다시, 경주. 이천년(二千年) 고도 경주에는 높이 80m짜리 랜드마크가 위용을 자랑했다. 선덕여왕이 세웠다는 황룡사 9층 목탑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의 남산타워나 롯데월드타워쯤 될까. 그 웅장함만으로도 페르시아·중국·일본에서 건너온 무역상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알려진 대 로 황룡사 목탑은 백제인 아비지(阿非知)가 지휘하고, 신라 장인 200명이 힘을 보탠 결과물이다. 완성된 게 645년, 대몽 항쟁 때(1238년) 불타 사라졌으니 600년 가까이 신라의 달밤을 지켜본 셈이다. 신라는 ‘원수의 나라’ 백제에 비단과 보물을 보내 ‘특급 엔지니어 겸 아티스트’를 초빙했다. 백제는 당대의 선진국 남조와 교류하며 건축·조형 기술이 앞서 있었다(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 ‘원수의 나라’ 출신에게 국가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길 만큼 신라인의 마인드가 열려 있었음도 분명하다.

하나 더. 고려 광종 때 쌍기(雙兾)를 ‘특급 예우’한 사례는 지금 중국 젊은 세대의 분노와 빼닮았다. 광종이 후주인 쌍기를 귀화시켜 과거제를 시행하고, 고려의 인재 등용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역시나 유명한 얘기다. 여기엔 질투와 논란도 따랐다. 광종은 쌍기에게 집과 벼슬을 주고, 그의 아버지도 모셔오게 배려한다. 이때 나중에 ‘강동 6주 담판’으로 이름을 남긴 서희의 아버지 서필이 “중국에서 온 자를 지나치게 감싸신다. 폐하는 어느 나라 황제입니까”고 항변한다. 광종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분명한 건, 지금 ‘열린 경주’와 광종식 레드카펫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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