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약속을 믿지 마라 : 윌리엄 키드 & 킴 닷컴 [허두영의 해적경영학]

2025-11-20

1701년 5월 영국 템즈강의 한 항구에서 가엾은 해적 선장이 교수형을 당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결박당하고 목은 올가미에 걸린 채 축 늘어져 쇠창살에 갇힌 상태로 죽었다. 향년 47세. 당국은 해적질에 대한 경고로 썩어 문드러져 해골이 드러날 때까지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했다. 억울하게 해적으로 몰려 사형당했다가, 가장 유명한 해적으로 부활한 ‘캡틴 키드’(Captain Kidd)라는 애칭을 가진 윌리엄 키드다.

‘캡틴 키드’는 원래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해적질을 하는 사략선(私掠船)을 지휘했다. 무굴제국 황제 에우랑제브의 무역선 ‘콰다르 머천트’(Quedagh Merchant)는 왜 하필 그 때 프랑스 국기를 달았을까? ‘캡틴 키드’는 1698년 ‘콰다르 머천트’를 붙잡아 엄청난 보물을 털었다. 분노한 무굴제국의 협박에 영국은 ‘캡틴 키드’를 해적으로 몰고 대대적으로 수배령을 내렸다. 이 때 건 현상금만 해도 2000 파운드(100억원)를 넘었다고 한다.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비굴한가?

졸지에 해적으로 몰린 ‘캡틴 키드’는 자신을 후원하던 뉴욕 식민지 총독 벨로몬트 경에게 편지를 보냈다. 살려주면 숨겨놓은 100만 파운드(5조원)의 보물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이 때 ‘캡틴 키드’가 준 보물지도로 뉴욕의 가디너 섬을 뒤진 결과 1만 파운드(500억원)의 보물이 발견됐다. 해적이 숨긴 보물을 보물지도로 찾아낸 매우 드문 사례다. 총독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수한 ‘캡틴 키드’를 체포해서 보물과 함께 영국으로 보냈다. 보물은 재판에서 해적질 증거로 채택됐다.

편지는 해적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전설을 만들어냈다. 보물지도만 있으면 보물섬에 가서 해적의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캡틴 키드’가 숨긴 나머지 보물이 어느 외딴 섬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황금풍뎅이’와 로버트 스티븐슨의 동화 ‘보물섬’은 ‘캡틴 키드’의 편지를 근거로 대중의 상상을 자극했다. 우연히 골동품 상자나 서류에서 ‘W.K.’(William Kidd)라는 서명이나, 시기를 뜻하는 연도 ‘1669’나, 장소를 가리키는 ‘China Sea’와 비슷한 흔적을 보면, ‘캡틴 키드’가 숨긴 보물을 찾는 단서가 아닐지 의심해 볼 일이다.

가엾은 ‘캡틴 키드’가 겪은 비극은 ‘메가업로드’(Megaupload) 창업자 킴 닷컴(Kim Dotcom)의 사례와 비슷해 보인다. 킴 닷컴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에서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의 책임은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는 ‘메가업로드’가 저작권 침해를 방조한다며 조직적인 범죄집단으로 규정했다. 새로운 기술이 법규와 부딪힐 때, 법적인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 법률과 자본을 틀어쥔 정부 앞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

킴 닷컴은 컴퓨터 보안 전문가로 협력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영화계와 음반계가 ‘메가업로드’를 디지털 해적으로 몰아 부치자, 미국 정부가 태도를 바꿔 ‘메가업로드’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버렸다. 미국이 압박을 높이자 뉴질랜드 법원도 미국 송환에 동의한 가운데, 킴 닷컴은 아직도 건강을 핑계로 뉴질랜드에서 버티고 있다. 그렇다. 정부나 권력자는 언제든지 약속을 깰 수 있다!

영국 정부가 ‘해적’ 프레임을 씌우고 체포하려 하자, ‘캡틴 키드’는 쉽사리 보물지도를 넘겨주는 바람에 협상에서 주도권을 뺏겼다. 킴 닷컴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고 자산을 압류하거나 동결하면서 방어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킴 닷컴은 스스로 ‘인터넷 자유의 수호자’(Guardian of Internet Freedom)라고 언론에 호소했지만, 지루한 법정 다툼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금과 건강을 모두 소진해 버렸다.

해적-보물지도-보물섬으로 이어지는 해적 설화는 거의 대부분 ‘캡틴 키드’의 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동화 ‘보물선’의 롱 존 실버나 ‘피터팬’의 후크 선장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해적의 대명사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로 꼽힌다. 왜 ‘캡틴 키드’는 극적인 배경만 제공하고,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걸까? 해적으로 낙인 찍히기 싫었던 ‘해적’이기 때문이다. 협상에 실패하면, 차라리 도끼를 들고 진짜 해적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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