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식품시장 ‘축소판’ 홍콩…한국산 신선농식품 현주소는?

2024-10-07

홍콩이 세계 농식품 수출의 테스트베드(시험장)로 각광받으며 수출국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인구 730만명, 식품시장 규모는 299억 달러(2022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배후 거대 중화권 수요의 양적 질적 성장세가 가파른데다, 세계적인 쇼핑·관광 입지에 기반한 여러 문화권의 다양한 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식품 수출의 전초기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또한 수출입 관세가 없어 시장 진출입이 자유롭다는 점과, 수입 상품에 개방적인 소비 환경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받으면서 수출국들이 홍콩 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9월말 서울대 농식품경영유통 최고위과정(AAMP) 연수단과 함께 홍콩 유통업계 시장조사를 통해 한국산 농식품 수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수출확대를 위한 과제를 짚어봤다.

◆한국산, 품질 우위에도 시장 점유율 뒤져=“한국산 사과의 품질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확신해 홍콩으로 들여와 시험 판매에 나섰지만 도무지 팔리지가 않더군요. 여러날 무료 시식에 가격할인까지 해도 판매가 지지부진해 결국 ‘일본산 ‘부사’ 품종 사과’라고 표기하니 그때서야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국제 물류운송 서비스회사인 ‘왝 로지스틱스(WAC LOGISTICS)’ 홍콩지사의 유재헌 이사가 4년 전 한국산 신선농산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시도했다가 실패한 씁쓸한 경험담이다. 47년 업력의 한국 최초 화물 통합 회사인 이 업체는 당시 한국산 신선농축산물 가운데 사과를 비롯한 과일류, 과채류·육류의 경우 특히 품질경쟁력이 뛰어나 프리미엄급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직접 판로를 개척하려 했으나 낮은 소비자 인지도 때문에 시장진입 과정에서 쓴 맛을 보고 만 것이다. 그는 “최근 홍콩에서도 한류, 특히 K-드라마 열기가 확산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산 농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품질은 일본산, 가격은 중국산’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프리미엄급 수요 일본산이 장악=9월27일 홍콩 센트럴 IFC몰 2층 프리미엄 슈퍼마켓인 ‘시티슈퍼(City Super)’ . 홍콩이 수입품 천국임을 보여주듯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곳으로, 과일과 채소, 육류는 물론 가정간편식(HMR), 가공식품 등 고급 식재료가 곳곳의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국·일본·미국·호주·칠레·스페인·캐나다·태국·필리핀 등 세계 각국에서 수출한 농축산물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신선식품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품목은 단연 일본산이다. 포도·멜론·방울토마토·피망 등 과일·과채류와  양상추·아스파라거스 등 채소류, 쌀 등은 일본산 비중이 압도적이다. 중국산(마늘·양파, 무, 배추, 양배추 등)과 미국산(사과, 쇠고기 등), 유럽산(딸기, 쇠고기·돼지고기 등), 동남아산(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등)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산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고 가격대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돼 있다. 반면 한국산은 계절적 영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과일과 채소류에서 주력으로 꼽을 만한 눈에 띄는 품목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쌀과 한우 정도만 다른 나라의 고가 브랜드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신선식품 수출 성장 정체=한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홍콩 현지의 인지도와 선호도가 아직은 대중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일반 마트에서도 확인된다. 9월28일 홍콩의 이마트로 불리는 ‘웰컴(Wellcome)’ 매장. 홍콩 내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이곳에서도 한국산 신선식품 점유율은 일본산과 중국산, 미국산, 유럽산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파악됐다. 한국산 라면과 김치, 주류, 냉동만두를 비롯한 가공식품, 과자류 등은 한국산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신선식품은 중국산과 일본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2년 기준 홍콩의 식품 수입액 208억 달러 가운데 중국산 점유비가 3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칠레(7.6%), 미국(7.2%), 일본(6.2%), 태국(5.9%) 순으로 나타났다. 홍콩 식품 수입액 중 우리나라 비중은 1.9%(3억8,664만 달러)로, 전체 중 15위에 그쳤다. 10여년 전부터 중화권을 비롯한 해외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홍콩을 집중 공략해왔지만 아직은 기대만큼 큰 성과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대홍콩 한국산 수출 추이를 보면, 조제식품류 수출액은 2018년 2,439만달러에서 2022년 2,674만달러로 5년간 연평균 2.3% 증가했고, 라면의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8% 성장했다. 반면 농산물 수출액은 2018년 이후 연평균 0.1%의 감소세를 보였다. 주류및 가공식품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 반면 농산물은 정체 상태에 놓인 것이다.

◆마케팅 확대와 안정적 공급이 관건=현재 홍콩 유통업계에서 한국산 식품은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게 현지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홍콩에 한국식품과 주방용품을 공급하는 ‘뉴월드마트(New world Mart·신세계마트)’의 한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와 K팝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고, 특히 개방적인 성향의 젊은층들 사이에서 한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라잡아 가고 있다”며 “한류 확산을 기반으로 한국산 농식품에 대한 현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면 신선농축산물의 인지도와 선호도가 빠르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생산기반 안정도 향후 수출확대의 핵심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현호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홍콩 지사장은 “최근 기후변화로 일부 품목의 수급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수출선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었던 만큼 생산기반 안정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신선농축산물의 품질 경쟁력은 충분하며 특히 딸기, 포도, 쇠고기 등은 향후 큰 성장이 기대되는 품목으로 생산과 공급이 안정화되면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홍콩은 시장규모는 작지만 세계 농식품 시장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중요한 곳”이라며 “우리나라 신선식품의 수출확대를 위한 핵심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브랜드 마케팅과 함께 안정적인 공급기반 구축,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물류업체들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콩=이경석 기자 ksle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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