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를 만나는 좌절…알츠하이머 배우, 살아내다

2025-02-27

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문학동네 | 288쪽 | 1만6800원

배우 이마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몸무게를 잰다. 60세의 생일날 아침. 그는 체중계 위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큰 키에도 55㎏을 유지해온 몸무게가 하룻밤 새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이마치에겐 ‘연기를 잘한다’는 게 유일한 자부심이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머리가 하얘져 대사를 까먹는 일이 반복된다. 급기야 유령 같은 헛것을 보는 이마치에게 의사는 ‘알츠하이머 전 단계’ 진단을 내린다.

연기하는 일상을 이미 잃었지만 병증이 아주 깊어진 것은 또 아닌 상태. 모호한 진단에 혼란스럽던 이마치는 대안 치료 병원을 추천받는다. 독특한 의사, 제제와의 상담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마치는 제제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기억에서 과거의 이마치를 만난다.

소설은 파편화된 이마치의 기억을 따라 각각 다른 나이의 이마치를 보여준다. 25세, 43세, 60세 등의 그는 한 사람이지만 같지 않다.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처럼 서로 다른 결로 존재한다.

3월에 태어나 ‘마치’라는 이름이 붙은 그의 생애는 도중에 주저앉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불행이 도사렸다.

아버지는 일찍 죽고 미군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기지촌’에서 자랐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제 한 몸 돌볼 틈 없이 연기를 해냈다. 그러던 중 아들 정민이 실종됐다. 연기를 하는 것과 아들을 찾는 것. 두 가지가 남은 이마치의 삶을 지탱했다.

드라마 <안나>로 영상화된 <친밀한 이방인>을 쓴 정한아가 내놓은 8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책은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한 배우의 일생을 그려낸다.

병원 상담실과 가상 공간을 유려하게 오간다. 이마치는 “세상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버릴 수 없는 표정”을 잃지 않는다. 좌절은 과정일 뿐이라는 듯,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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