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들어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금융지주들의 보통주자본(CET1)비율에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융지주들의 기업가치 제고(Value-up)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2.9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는 연중 최고점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약 16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후 야간거래 시간대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한때 1477원까지 치솟았다.
환율 상승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 격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지연 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 관세 부과 조치(4월 2일, 현지 시각)를 앞두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진 것도 원화 약세를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4월 예정된 미·중 무역 분쟁 이슈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환율 상단이 1500원 내외까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환율 상승은 금융지주들의 CET1비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CET1비율은 금융사의 핵심 건전성 지표로,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보통주자본의 비율을 뜻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금융지주들이 보유한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증가하면서 RWA가 확대되고, 이에 따라 CET1비율이 낮아지는 구조다.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CET1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환율 상승 국면에서도 국내 은행들의 CET1비율이 일제히 하락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지주 8곳과 비지주계열 은행 9곳 등 17개 사의 지난해 말 기준 CET1비율은 13.07%로 전 분기 대비 0.26%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농협금융(12.44%)과 우리금융(12.13%) 등 일부 금융지주는 주주환원의 기준선으로 여겨지는 13%를 밑돌았다.
CET1비율 하락은 금융지주들의 밸류업 전략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금융지주들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CET1비율 유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고환율 지속으로 금융사들의 위험자산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자본여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환율, 경기 회복 지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신용 손실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금융여건이 악화되더라도 은행들이 원활한 신용 공급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경우 금융지주들의 CET1비율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만큼,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