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뚫은 후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면서 1달러당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이 확정되기는 했지만 당분간 정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고 연 1% 성장률도 고착화하고 있어 원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서학개미’들의 국내 증시 탈출과 미국 관세 변수도 우리 환율 시장을 뒤흔드는 변수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환율 전문가를 대상으로 긴급 시장 전망을 한 결과 대다수가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 밴드로 1400~1500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1300원을 넘어 1100~1200원대로 다시 진입(원화 가치 강세)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원·달러 환율 평균치는 1356.45원이다. 반면 지난해 12월 2일부터 1400원을 넘긴 후 단 한 번도 1300원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1400원대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한국 경제 특성상 원화는 미국 증시나 글로벌 무역 여건 등에 크게 노출돼 있어 원·달러 환율이 내려오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다수가 환율 저점을 1400원대로 고정하고 상단은 1500원까지 높인 결정적인 배경은 미국발 ‘관세 리스크’다. 도널드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와 이후 대상국의 반발로 글로벌 무역전쟁 전면전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제에 끼치는 충격파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펀더멘털 측면만 보더라도 한국 경기가 좋지 못해 일부 기업에서는 환율 고점을 1500원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고 설명했다.

1300원대 환율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용호 KB증권 부부장은 “이제는 1300원대 환율을 논할 게 아니라 환율 레벨이 1450원 아래 혹은 위에 있을 것인가의 싸움이 될 것 같다”면서 “이미 고점이 1470원대로 높아져 있는 한 1500원 돌파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미 경제 악화 우려로 글로벌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 원·달러 환율만 오르고 있다는 점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의미하는 DXY지수는 연초 108대에서 최근 104대로 주저앉았는데 주요 통화 중 원화만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
문홍철 DB증권 부장은 “DXY를 구성하는 절반 이상이 유로화로, 최근 달러 약세는 유로화 강세 측면이 짙다”면서 “원화가 유로화와 동조하는 통화가 아닌 데다 독일처럼 강력한 재정 부양책이 나오지 않는 한 반등 재료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1달러=1400원’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 후 정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1300원대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달러 약세를 골자로 하는 ‘마러라고 합의’가 현실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편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원 내린 1471.9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미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경계심이 고조돼 1476.7원까지 상승했지만 장중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선고기일이 알려진 직후 방향을 틀어 하락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