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국민 3분의 1은 살면서 한 번은 정신장애를 앓는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의 문턱을 넘는 숫자는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신장애를 보는 부정적 시선에서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두려움이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지, 그 같은 편견이 실제로도 맞는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와 제약사 등에 물었다.

#일부의 질병? “국민 3분의 1이 경험”
정신장애를 겪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다. 국가정신건강포털 정신건강 통계에 따르면 평생 동안 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장애를 한 번 이상 경험한 적이 있는 비율을 의미하는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27.7%에 이른다. 우리 국민 3분의 1가량이 살면서 한 번은 정신장애를 앓는다는 뜻이다. ‘우울장애’로 좁혀봐도 성인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응답자 수를 나타낸 ‘우울감 경험률’이 11.3%가 된다. OECD 국가 평균인 10.7%를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치료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는 많지 않다.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한 ‘정신건강서비스 이용 비율’은 한 자릿수인 4.5%에 그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한정하면 3.7%로 더 줄어든다.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이 27.7%인 점을 고려하면, 정신장애를 호소하는 이들 가운데 약 13%만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는 의미다.
#채용·승진에 불이익? “진료기록은 본인만 확인”
환자들이 전문의 상담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진료 기록’ 등과 관련한 각종 오해 때문이다. 직장에서 자신의 진료 기록을 열람해 채용이나 승진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의료법 제21조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병원 진료 기록부는 환자 본인이 아닌 이상 볼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가 공개될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정신과 진료도 다른 과와 동일하게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이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자료가 남는다. 하지만 이 기록 역시 수사나 재판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공개를 요청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 씨는 “일부 기관은 채용예정자에게 ‘본인확인용 건강보험 급여 내역’ 제출을 요구하지만, 진료 내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합격 처리를 할 수는 없다.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전문가 소견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안감 때문에 ‘비보험’ 진료를 택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으면 약값을 포함해 평균 7만~10만 원 안팎의 적잖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도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비보험(일반) 진료를 원하는 경우 알려달라’는 문구가 게시된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전문의 A 씨는 “일정 기간 보험 가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문제가 없다고 안내하지만 불안한 환자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환자 입장을 이해하고, 기록이 마무리되는 월말까지는 건강보험 진료로 바꿀 수 있다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전문의약품인 이유? “환자마다 반응 다르고 부작용 우려”
일부 환자들은 정신과 방문에 앞서 ‘일반의약품’ 항우울제를 찾지만 시중에서는 두 제품 정도만이 판매되고 있다. 판매 약국 역시 적어 인터넷에 ‘구매 가능 약국 목록’이 공유되기도 한다.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항우울제 일반의약품인 유유제약의 ‘노이로민정’과 동국제약의 ‘마인트롤정’은 각각 중추신경용약, 무기력증개선제로 효능을 밝혔다. 불안과 무기력 상태를 완화하고, 가볍고 일시적인 우울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다. 두 제품 모두 식물 ‘세인트존스워트(서양고추나물)’ 추출물을 성분으로 하며, 체내 신경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나타낸다.
항우울제 대부분이 전문의약품으로 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약업계는 정신 질환의 특성과 항우울제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꼽는다. 전문의약품 항우울제를 보유한 제약사 관계자 B 씨는 “신경, 정신과 질환은 일반의약품으로 처치하기가 어렵다. 환자 상태가 비슷하더라도 성분에 따라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용량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도 적은 용량에서 시작해 늘려야 하는 등 환자마다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씨는 “항우울제는 우울증뿐 아니라 통증 관련 질환이나 IBS(과민성대장증후군) 등에도 쓰인다. 신경 쪽에서 오가는 신호를 조절하는 것이라 일반의약품으로 복용하기에는 소변이 안 나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환자 혼자서는 부작용인지 아닌지 모를 수 있는 문제도 있어 대개 전문의약품으로 출시된다”고 덧붙였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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