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미 투자기업 77% "美 약속 이행 안되면 투자계획 바꾼다"

2024-10-20

국내 한 대기업 A사는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주(州) 정부와 2년 넘게 세제 혜택 협상을 벌여 왔다. 투자 조건 등에 합의가 되어가는 듯 했다가 몇 달 전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처음엔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는데,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단 기조로 바뀌면서 협상이 멈춘 상태”라며 “투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A사는 캐나다·멕시코 등 미국 인근 국가에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대미투자가 늘어난 가운데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 연방·주 정부가 약속했던 혜택의 이행 가능성이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중앙일보가 미국 대선(11월 5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대미투자기업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진행한 결과 미 연방정부·주정부가 약속했던 혜택이 이행되지 않으면 투자 계획을 변경하겠다는 응답이 76.6%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투자실행 지연(40%), 투자규모 축소(33.3%), 투자계획 전면 취소(3.3%) 등의 순이었다. 기존 계획대로 투자를 실행하겠다는 응답은 23.3%에 그쳤다. 최근 3년 내 미국에 500만 달러(약 68억원) 이상 투자한 기업 30개사(대기업 16곳·중견기업 12곳·중소기업 2곳)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투자혜택 이행 속도 느려” 73.3%

미 정부나 주정부로부터 투자 혜택을 약속받은 기업에 이행 상황을 물으니 ‘이행 속도가 느리다’는 답변이 73.3%로 나타났다. ‘대부분 이행되고 있다’는 26.7%에 그쳤다. 이들이 약속받은 혜택은 법인세 감면 등 세제 지원(66.7%·복수응답)이 가장 많았고, 전력·용수·도로 등 인프라 구축(26.7%), 보조금 지급(20%), 토지 무상임대(13.3%), 정부 구매(10%) 등의 순이었다.

미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은 대미투자기업 중 대기업이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 대선으로 인해 현재 대미 투자 및 향후 투자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의 크기를 묻자 대기업 중 68.8%가 ‘불확실성이 크다’(매우 큼 6.3%·다소 큼 62.5%)고 응답했다. ‘다소 작음’은 25%, ‘거의 없음’은 6.3%였다. 반면 중견기업은 ‘다소 작음’(66.7%)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고 ‘다소 큼’은 16.7%에 그쳤다.

대기업의 대미투자는 첨단산업 중심으로 대규모 장기 투자이며, 그 배경에 보조금 등 정부 혜택이 많았다. 2022년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인플레이션갑축법(IRA) 이후 한국 대기업들은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당선 시 혜택이 줄어든다면 상당한 타격을 볼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투자 규모는 215억 달러(약 29조4000억원)로 세계 1위였다.

“美대선 대응안 있다” 3.3%뿐

미국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해 사전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자 ‘대응 계획을 준비 중’이란 응답이 70%로 가장 많았다. ‘대응 계획 없다’는 응답은 26.7%였고, ‘대응 계획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3.3%뿐이었다. 기업들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가장 우려하는 불확실성 요인으로 ‘통상정책 변화’(해리스 당선 시 33.3%·트럼프 당선 시 46.7%)를 꼽았다. 미국 내 공장을 운영 중인 대기업 B사 관계자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해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내년 투자계획은 정한대로 하겠지만, 이후에는 차기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에서도 한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 지원 약속이 이행되도록 대미 아웃리치(대외 접촉)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기업이 중장기적 상황을 고려하고 치열한 협상을 통해 결정한 투자를 뒤집는다는 건 혹독한 일”이라며 “미 대선 이후에도 국내 기업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민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미국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에 대해 좀 더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시장, 기술, 자원 등을 중심으로 투자처를 찾아왔는데 앞으로는 정책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 고민할 포인트가 많아졌다”며 “대기업들은 국제 상황 변화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겠지만, 중소·중견기업은 힘들 수 있으니 정부가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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