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영국 사회에서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이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영국 국방부(MoD)가 차량 안에서는 기밀 대화를 하지 말고, 전자기기도 연결하지 말라는 내용의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 등 현지 매체가 지난 1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위치 추적은 물론 각종 군사 기밀과 정보, 대화 내용이 차량의 전자시스템을 통해 그대로 중국으로 전송될 위험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전기차를 도입했지만,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전기차가 실제로는 최첨단 스파이 장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가 부착하도록 한 스티커는 두 가지 종류였다.
하나는 '국방부 기기를 차량에 연결하지 말라(MOD Devices are NOT to be connected to this vehicle)'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차 안에서 공무 등급을 넘는 대화는 삼가하라(Avoid conversation above OFFICIAL within the vehicle)'는 내용이다
영국 정부의 정보 등급은 공무(official) 기밀(secret) 최고 기밀(top secret) 등으로 나뉘는데, 기밀 등급 이상의 내용은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충전 등을 위해 휴대폰과 노트북, 기타 전자기기를 차량에 연결하는 것도 금지된다.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정보가 통째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간 더타임스는 "수백 대의 국방부 차량과 밴의 대시보드에 스티커가 부착되었다"며 "이들 차량은 국내와 해외에서 병력과 장비, 보급품을 운송하는 데 사용되는 임대 '화이트 플릿(white fleet·공용차량)'에 소속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국방부가 운용하는 화이트 플릿에는 순수 전기차 745대, 하이브리드 1400대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보안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속 정보와 연락처, 문자 메시지, 위치 기록이 충전 케이블을 타고 차량 메인 컴퓨터(ECU)로 넘어간 뒤 차량 내 통신 모듈을 통해 중국 내 서버로 전송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국방부는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백 대의 전기차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중국 기업이 만든 차량"이라며 "이들 전기차가 민감한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중국 본토로 전송할 수 있는 마이크를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했다.
영국 국방부가 쓰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는 상하이자동차(SAIC) 산하 브랜드인 MG(모리스 개러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영국 브랜드였지만 경영난으로 2005년 중국 난징 자동차에 팔렸다. 지금은 중국 기술과 자본으로 중국에서 생산된다.
최근 영국에서는 중국이 이들 차량을 첩보 활동에 동원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정부의 정보·보안 연구기관인 스파이랩은 전기차가 중국의 스파잉 위협에 취약해 국가 안보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의 공식 보고서도 중국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차량을 이용해 사실상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군사 정보 분야에서 근무했던 필립 잉그램 예비역 대령은 "현대 차량은 단순한 차가 아니라 제조사로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 감시 기능과 센서가 내장된 컴퓨터 시스템"이라며 "중국 정부가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을 국방부가 당연히 인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 국내 부문 정보기관인 MI5도 같은 날 "중국 정보기관이 영국 의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활동을 하고 있다"며 중국 스파이 경계령을 발령했다
지난 2023년 8월에는 리시 수낙 전 총리의 차량에서 SIM 카드 기반의 추적 장치가 발견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당시 일부 언론은 "해당 부품이 중국에 기반을 둔 공급업체로부터 수입된 봉인 부품 안에 숨겨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