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건설사에게 그야말로 '한파'였다. 원자재 가격과 금리가 오른 탓에 원가율이 높아져 영업이익률이 크게 줄어든 데다, 공사비 갈등이나 저조한 분양률로 발이 묶인 현장도 많았다. PF 우발채무도 계속해서 위협이 됐다. 일부 업체들은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자산이나 자회사를 매각하거나 연말 밀어내기 분양을 하면서 현금 확보에 주력하기도 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중 절반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 10대 건설사 중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은 DL이앤씨와 GS건설, 포스코이앤씨, SK에코플랜트 등 4곳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보다 누적영업이익이 줄었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회사들 가운데에선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실적을 올린 곳도 많았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3051억에서 올해 1923억원으로 누적영업이익이 3분의 1 토막 났다. 대우건설은 67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데 그쳐 전년보다 82.57%가 줄었다. 롯데건설도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33.79% 줄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42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건설사들의 영업이익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2021년부터 급등한 원자재가격에 대한 부담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영향이 크다. 국내 건설사 대부분은 주택사업에 대한 비중이 70% 이상으로 크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공사에 소요되는 기간은 40~45개월이다. 원자재가격 부담이 반영된 아파트의 공사비 결산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건설업계에선 원자재 부담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올해 9월 130.45로 4년 만에 약 30%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별 건설사들의 원가율도 대부분 90%를 넘어선 상태다. 통상적으로 업계에선 원가율 80%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에 따른 우발채무도 건설사들의 고민거리다. 건설사들은 2019년 부동산 폭등기를 기점으로 수주액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2022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분양을 마치지 못한 많은 현장들에서 자금이 묶였고, 이는 고스란히 PF 우발채무 누적으로 이어졌다.
태영건설은 이러한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케이스다. PF 우발채무를 막지 못한 태영건설은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신청해 올해부터 알짜자산들을 매각하며 경영개선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 사옥빌딩을 비롯해 소유하고 있던 골프장 상당수를 매각하고 알짜 자회사 에코비트도 매각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는 다른 건설사들로 하여금 자산을 처분하면서 현금 마련에 나서게 만들었다. 유동성 위기가 커지면서 PF 만기연장 거부 가능성이 커지자 현금을 마련하면서 선제 대응에 나선 것.
현금 마련은 자회사의 지분을 정리하거나 부동산 자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민간형 임대주택 '힐스테이트 호매실'의 분양전환을 3개월 앞두고 지분 일부를 매각해 약 9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GS건설은 수처리 기업인 자회사 'GS이니마'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연말 밀어내기 분양도 이러한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분양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분양보증 과정에서 발생한 재무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방에 따르면 이달 전국에선 40개 단지, 총 2만8070가구(일반분양 1만7358가구)가 분양할 예정이다.
선별수주와 경쟁회피도 건설사들의 주요 생존전략이다. 실제로 올해 건설업계에선 경쟁입찰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입찰사가 한 군데도 없어 유찰되는 현장도 많았다.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은 여의도 한양과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은 부산 촉진2-1구역 정도에서만 수주전이 성사됐다.
인력감축도 단행했다. 대부분 건설사는 정직원 수는 그대로 두고, 현장을 담당하던 프로젝트체용직(PTJ)과 현장체용직 등 기간제근로자와의 계약을 만료하는 방식으로 수를 줄였다.
정직원 수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임원을 감축한 곳은 많았다. GS건설은 기존 102개의 그룹과 담당으로 이뤄진 '본부-그룹-담당-팀' 4단계의 조직구조를 '본부-부문-팀' 3단계로 단순화했다. 대우건설은 기존 7본부 3단 4실 83팀을 5본부 4단 5실 79팀으로 축소했다. 이외에 DL이앤씨, SK에코플랜트 등이 임원을 감축했다.
수장을 교체하면서 세대교체에 나선 건설사도 있다. 대형건설사 중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대우건설, GS건설, SK에코플랜트가 수장을 교체했다. 중견건설사에선 진흥기업, KCC건설, 신세계건설, BS산업이 CEO를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