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칼럼] 난관에 부딪힌 신용의무법

2024-09-29

올해 9월로 예정됐던 ‘신용의무(Fiduciary)법’의 시행이 어려울 듯하다. ‘신용의무법’은 ‘재정설계사는 투자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미 지난달 ‘보험 업계의 강력한 반대로 신용의무법의 9월 시행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현재는 주식 브로커, 보험 에이전트, 그리고 대다수 재정설계사에게는 고객의 이익을 우선해서 일해야 한다는 법적 규제가 없다.

고객의 투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방 노동부는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은퇴자금 보호를 위해 수년간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신용의무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보험 업계, 특히 대형 보험사들의 극심한 반대와 소송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연방 노동부가 이 법을 만든 이유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의 모든 은퇴플랜(401K, 403B, TSP, SEP or Simple IRA, 등)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연방 노동부의 티모시 D. 하우저 부차관보는 “신용의무법은 재정설계사들이 더 신중하고, 높은 투자 비용을 초래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고객의 이익을 우선하는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법 제정 이유를 밝혔다.

가령 고객이 재정설계사가 추천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재정설계사는 수수료를 받게 된다. 그런데 금융상품을 판 이유가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한 투자인지, 아니면 재정설계사의 이익을 위해서 투자한 것인지 투명하지가 않다. 신용 의무가 없는 재정설계사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투자자에게 투사상품을 팔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연방정부 추정에 따르면 은퇴나 이직으로 2022년에만 7700억 달러 규모의 은퇴자금 계좌 이동이 있었다. 신용의무법은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규정은 재정설계사들이 수수료를 위해 고객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 투자 조언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의무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험 업계 측은 법이 시행되면 상담 비용 등으로 인해 재정 상담을 받을 기회가 적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 서비스 업체인 모닝스타(Morningstar)는 신용의무법이 시행되면 어뉴이티 투자자들만 해도 향후 10년간 무려 325억 달러를 절약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그만큼 보험 업계의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소비자선택연맹 (FACC)도 신용의무법이 재정설계사의 수수료를 제한할 수 있어 ”보험 업계에는 잠재적 악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 기관에 등록된 재정설계사(Registered Investment Advisor, RIA)만이 신용 의무가 있다. 사실 신용 의무가 있다고 해도 재정설계사가 얼마나 성실히 신용의무를 준수하느냐는 재정설계사 개인에게 달려있다. 하물며 처음부터 신용 의무가 없는 재정설계사가 투자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서 투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인들은 평생 모은 소중한 자산을 남에게 맡기면서 ‘신용 의무’ 등에 관해 질문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정’에 약한 우리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정설계사에게 ‘신용 의무’가 있는지 확인하고 문서화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정직한 재정설계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한평생 일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소중한 돈이다.

이명덕 /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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