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인 줄 알고 운반했는데 장난감이 들어있는 상자였다면 ‘마약류 불법거래죄’를 물을 수 있을까? 법원은 마약류 거래를 막는 현행 법률상 마약류를 규정한 ‘물품’이 약물의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고 해도 마약류로 인식했다면 이를 거래한 사람은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32)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이 선고한 징역 3년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류 판매상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국제우편물을 통해 마약을 운반하는 이른바 ‘드라퍼’(던지기책)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31일 밤 경기 안산시에서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했다. 이 상자는 앞서 다른 던지기책이 우체국에서 받아 이곳에 던져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자에는 마약이 들어있지 않았다. 당초 판매상이 상자에 넣어놓겠다고 했던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2526만원 상당의 MDMA(엑스터시) 842정’은 없었다. 이미 세관의 적발로 마약은 수거된 상태였고 상자 안에는 장난감만 들어있었다.
수사당국의 추적으로 마약 운반책으로 기소됐지만 A씨는 억울했다. A씨는 1심 재판에서 “국제우편물 상자는 약물 등 마약으로 오인될 외관이 아니므로 법률상의 ‘약물 및 그 밖의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상자를 수거한 다음 상자를 열어 마약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소지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어 “상자에 가액 500만원 이상의 마약류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가액에 따른 가중처벌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행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 특례법 9조2항은 ‘마약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하거나 소지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A씨는 장난감을 운반한 것이니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법이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해 물품 외관이 마약으로 오인될 수 있는 것으로 물품 내용이나 성질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이어 “A씨가 범행 이전에 마약거래 상선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마약류 거래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고, 인터넷으로 ‘국제우편 배송조회’ 등을 검색했던 점, 드라퍼를 구하는 검색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우편물 상자 안에 마약류가 들어있다고 인식하면서 우편물 상자를 수거한 것”이라고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A씨가 당시 마약류 종류나 시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해도 거래량이 500만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중처벌 대상으로 인정했다.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지만 A씨는 항소했다. A씨는 “법률상 ‘그 밖의 물품’은 언어체계의 표현상 ‘약물과 동등하거나 비슷한 것’으로 성질을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어떠한 물품이어도 마약류로 오인하는 경우 처벌될 수 있어 일반인의 기준에서 이를 예견할 수 없고 가벌성이 지나치게 확대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법 규정의 취지는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 결과적으로는 마약류가 아니거나 그에 마약류가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마약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 소지하면서 대상의 착오로 인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까지 처벌함으로써 마약류 관련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마약류 범죄 예방을 도모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혔다.
A씨는 대법원 문까지 두드렸지만 대법원 역시 그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법 문언상 마약류 인식의 대상으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물품의 형상, 성질 등을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어떠한 물품이라도 마약류로 인식됐다면 이 사건 조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류 범죄 특성상 일반적으로 마약류는 상자 등의 내부에 든 상태(내용물이 감춰져 있는 상태)로 유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경우에도 마약류 자체만 유통되는 경우와 비교해 그 행위의 위험성 및 처벌의 필요성 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범죄 몰랐다” 발뺌 땐 솜방망이 처벌… 피해액 300억 중 추징금 고작 2억뿐 [심층기획-캄보디아 ‘검은돈’ 추적기]](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4/20251124516146.jpg)




![[2보] 성착취 '자경단' 총책 김녹완 1심서 무기징역](https://img.newspim.com/news/2025/02/08/2502080950439320_w.jpg)
![[단독] '범죄수익 세탁'에 쓰인 가상자산…몰수액 2년새 1519% 폭증](https://newsimg.sedaily.com/2025/11/24/2H0KW5W22O_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