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나 음식점은 물론 영화관이나 병원, 민원창구까지 키오스크가 ‘열일’하는 세상이다. 디지털 세상인 오늘날 민간과 공공을 막론하고 일상 곳곳에서 무인단말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무인화가 가속화하면서 디지털 접근권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월28일부터 바닥면적 50㎡ 이상의 사업장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설치하도록 했다. 2023년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따른 것으로,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 없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음성안내, 점자 키패드, 높낮이 조절, 글자 확대 기능이 있는 키오스크가 늘면서 접근성과 사용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이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소상공인 사업장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실과 일부 부처로부터 제기된 지적이나 민원을 들어보니, 소상공인에게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설치토록 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라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는다는 측면에서 언뜻 보기에는 이해할 여지가 있으나, 이 변화가 가지는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선, 제외될 수 있는 대상이 너무 넓다. 소상공인기본법에 따르면, 제조업·운수업은 상시근로자 10인 미만, 서비스업 등 기타 업종은 5인 미만이면 모두 소상공인에 해당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년 통계로 보면, 전체 사업체 중 약 590만곳에 이른다. 골목상권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영업 중이다.
다음으로, 접근성은 단순히 시설 확충이나 기기 교체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일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건의 평등을 만드는 과정이다.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이용하기 까다롭게 만들어진 키오스크는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정보 접근에 대한 장벽일 수 있으며, 이는 서비스 접근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국내 키오스크 중 점자 안내가 탑재된 기기는 27.8%에 불과하고, 휠체어 사용자 기준에서 적정 높이에 조작부가 위치한 기기 역시 25.6%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3년부터 키오스크 접근성 기준 고시를 마련하면서 화면 크기, 키패드 위치, 음성지원 기능 등 기술적 문제가 날로 나아지는 추세다. 소상공인 대상 ‘스마트상점 기술보급 사업’을 통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비용도 지원하고 있으며 간이과세자, 1인 사업자, 장애인 사업주의 경우 더 높은 지원율을 책정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추가 보조금도 지급하는 중이다.
소상공인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비용과 정보의 부족이 정책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당연한 권리를 예외로 돌리는 것’이 되어선 곤란하다.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에 부합하는 방향이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중요하지만 소상공인의 부담도 크다’는 이분법적 접근은, 결국 사회적 갈등만을 부추길 뿐이다.
지난해 12월 ‘1층이 있는 삶’ 사건에서 대법원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해 준 시행령을 방치한 정부 잘못을 인정하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는 단지 기술이나 장비, 혹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권리 실현이라는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 정책은 타협의 산물이지만, 권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여건의 시민들이 이제 조금씩 키오스크에 평등하게 접근해 가고 있는데, 정책을 성급하게 후퇴시킬 필요가 있을까.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무인단말기가 모두를 위한 기술로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의 방향성을 정연하게 다듬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