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아침 출근길에 나선 서울 중구 거주 직장인 김모(41)씨는 아파트 단지 안 풍경에 깜짝 놀랐다. 가로수들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거나, 위태롭게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겨울철에 수차례 폭설이 나타났지만 이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며 “아이들 등굣길이 걱정돼 나무 근처로 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습설’이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이틀째 폭설이 집중된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구조물과 나무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5시 경기도 용인 백암면에서는 집 앞에서 제설 작업을 하던 60대가 갑자기 쓰러진 나무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용인 백암면은 이날 전국에서 가장 많은 눈이 쌓인 곳으로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44.1㎝의 적설을 기록했다.
나무 전도로 인한 정전 피해도 잇따랐다. 전날 경기도 광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일대에서는 나무가 쓰러지며 수백 가구가 정전으로 인한 불편을 겪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는 가로수가 쓰러지면서 차량을 덮치고 길을 막는 사고가 발생했다.
늦더위로 나뭇잎 많은데 폭설 겹쳐
이번 폭설에서 유달리 나무 전도 피해가 많은 건, 아직 나뭇잎이 다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때 이른 폭설이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높은 해수 온도의 영향으로 수증기 공급이 원활하다 보니 비구름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때 이른 폭설을 불러왔다.
여기에 늦더위로 전국에서 단풍이 지각하는 바람에 잎이 떨어지는 시기도 늦춰졌다. 아직 가로수에 나뭇잎이 대부분 붙어있는 상태에서 폭설이 내리자 더 많은 양의 눈이 나무에 붙어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이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 형태로 내린 것도 피해를 키웠다. 습설은 습하고 따뜻한 성질의 남서풍이 불어오는 상태에서 지상 기온이 -1~0도로 아슬아슬하게 비가 눈으로 바뀌는 수준에 걸쳤을 때 함박눈의 형태로 나타난다.
습설은 보통 눈보다 2~3배 정도 무겁다. 가로 10m, 세로 20m 비닐하우스에 습설 50㎝가 쌓이면 비닐하우스가 견뎌야 하는 무게는 덤프트럭 두 대에 해당하는 30t(톤) 수준이다.
김성묵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특히 습설은 물기가 ‘본드’ 역할을 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며 “많은 양의 잘 붙는 눈 덩어리가 나무에 매달려 부담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한 습설은 아니었지만, 적설 많아 피해↑
기상청은 올해부터 ‘가벼운 눈’, ‘보통 눈’, ‘무거운 눈’ 등 눈의 무게를 3단계로 구분해 예보하고 있다. 이는 강수량을 눈으로 환산했을 때의 비율인 ‘수상당량비’로 구분된다. 가벼운 눈인 건설은 수상당량비가 20 초과, 보통 눈은 15 안팎, 습설은 10 이하일 때를 의미한다. 가장 무거운 수준의 습설은 수상당량비가 5~7 수준으로 10㎜(1㎝)의 비가 5~7㎝ 눈으로 만들어진 경우다.
전날 서울 관측소에 내린 눈은 수상당량비 10 정도의 습설인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무거운 수준의 습설은 아니지만, 양이 많고 시기가 일러 피해를 키웠다. 김성묵 과장은 “겨울철에 심한 습설이 나타나더라도 적설이 5~10㎝ 수준에서는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의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양이 너무 많고 낙엽이 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