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을 천장으로 옮기면, 넝마 같은 장막이 걸쳐져 있었다. 이미래(37)가 한국 작가로 처음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빈 홀에서 지난달 16일까지 연 개인전 ‘열린 상처’에서도,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영도 폐공장에 전시됐던 ‘구멍이 많은 풍경 : 영도 바다 피부’에서도, 지난달 28~3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했던 퍼포먼스 ‘미래의 고향’에서도 그랬다.
이미래는 ‘미래의 고향’ 퍼포먼스 후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작업할 때 직관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고 보니 테이트모던에서의 작업은 부산에서 낸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고향’은 ‘열린 상처’의 잔향에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5월부터 진행했던 다원예술 프로젝트 ‘우주 엘리베이터’의 마지막 참여 작가로 사흘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미래는 ‘열린 상처’에서 천장에 쇠사슬 54개를 걸고 거기에 탁한 분홍색 천 조각을 150개 달아두었다. 전시를 열었던 터빈홀은 미술관이 되기 전 화력발전소였던 테이트모던의 상징이다. 그곳에 여전히 남은 크레인과 작가가 제작했던 터빈은 자연스레 산업화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터빈에서 흘러나온 분홍색 끈적이는 액체는 천 조각으로 떨어진다. 군데군데 찢긴 천 조각은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가 입은 상처, 세상을 바꾸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한 예술가들이 마음에 입은 상처를 뜻한다. 이미래는 그 상처가 “잊지 않기 위해 열린 채로 존재하는, 굳지 않는 고통”이라고 했다.
이미래의 첫 퍼포먼스였던 ‘미래의 고향’에서는 천 조각의 자리에 작가가 서울 근교에서 수집한 폐기물들이 공연장을 메웠다. 평소 현수막이나 조명이 걸렸던 공연장 가로대에 걸린 폐비닐과 낡은 천이 ‘열린 상처’에서의 천 조각을 연상케 한다. 퍼포먼스는 폐기물이 천장과 바닥에 널린 공연장에서 음악가 이민휘와 배우 배선희가 번갈아 총 6번 진행했다. 폐기물이 널린 폐허를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연기와 노래 등 각자의 방식대로 선보였다. 이민휘는 음반 <미래의 고향>을 2023년 11월 발매했는데, 이미래는 이민휘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퍼포먼스의 이름을 똑같이 정했다.

이미래는 “폐기물은 생산의 이면이며,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이 결국에는 돌아가게 될 장소”라며 “잔해는 우리가 망각하고자 몸부림치는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바로 뒤에 바싹 붙어있는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퍼포먼스를 통해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열린 상처’ 때는 기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생산의 부산물을 다뤘다는 점, 그 부산물을 보며 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서 긍정적인 면을 보이려 했다는 점에서 이미래의 ‘열린 상처’와 ‘미래의 고향’은 닮았다.
퍼포먼스는 끝났지만, 이미래는 “‘미래의 고향’은 끝이라기보다는 어떤 시작처럼 느껴졌다”며 “퍼포먼스의 잔해들을 다른 장소, 다른 형식으로 다시 조립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인간과 기계, 물질과 시스템 사이의 긴장에서 ‘무너짐의 형식’을 탐구해왔다”며 “앞으로는 무너진 이후에 남는 감정들-후회, 환희, 체념, 혁명, 회복, 혹은 회복에 대한 저항-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