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주자 없는 오케스트라 없다”…해외파 뭉친 '발트앙상블' 10주년

2025-08-11

“요즘 웬만한 해외 오케스트라에 한국 단원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오디션에 가면 ‘어떻게 이렇게 한국 연주자들이 잘하느냐’며 물을 정도입니다.”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의 부악장이자 ‘발트앙상블’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설민경의 말이다.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모인 발트앙상블이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발트앙상블은 2015년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한국 연주자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귀국했을 때 모여 연주하며 시작됐다. 노이하우젠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차석을 역임한 최경환 발트앙상블 대표는 현지에서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실내악단을 보고 ‘한국에도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앙상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인 연주자들에게 제안했다. 첫해에는 3~4명의 소규모 편성으로 출발했으나 매년 연주자들이 합류하며 현재 정단원만 28명에 달한다. 전원 유럽 오케스트라 경력을 지닌 ‘해외파’로만 구성된 국내 유일의 기악 앙상블이기도 하다.

발트앙상블은 창단 취지대로 지휘자가 없다. 단원 전원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생 ‘젊은 또래’로 구성돼 호흡이 잘 맞는다. 1986년생 이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 역임)가 몇 년 전 음악감독으로 합류하며 체계가 한층 잡혔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음악을 완성하는 것이 발트앙상블의 방식이다. 이지혜 음악감독은 “각자 세계 무대에서 쌓아온 경험과 해석을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서로 토론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악이 더 풍성해진다”며 “매년 기량이 눈에 띄게 발전한 상태로 만나 호흡이 점점 더 잘 맞는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세화여중 음악실에서는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이날 모인 단원들은 이번 무대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곡 해석과 세부 표현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누군가 “여기서는 조금 더 여유를 주자”고 제안하면 다른 단원이 “그렇다면 다음 마디의 강세를 살리자”고 응수하는 식이다.

지난 10년간 발트앙상블은 코로나19 시기에도 멈추지 않고 매년 공연을 이어왔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초청 무대도 꾸준히 늘고 있다. 2년 전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제안으로 협연했고 최근 3년간은 비엔나·벨기에 등 유럽 무대에도 진출했다.

발트앙상블의 실력과 규모가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뛰어난 기량을 갖춘 한국인 연주자들의 ‘대약진’이 있다.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한국인 단원들이 빠르게 늘었고 수석·차석·악장 등 주요 보직을 맡는 경우도 많아졌다. 설민경은 “국제 콩쿠르 성과와 탄탄한 기본기, 문화와 언어 적응력 덕분에 오디션에서 한국인에 대한 신뢰가 크다”며 “기존 한국인 단원들에 대한 평가가 좋다 보니 편견 없이 오직 실력으로 선발된다”고 말했다.

이번 10주년 공연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펼치는 ‘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프로그램에는 그리그의 ‘홀베르크 모음곡’, 코플랜드의 클라리넷 협주곡, 슈니트케의 ‘하이든 풍의 모차르트’,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포함됐다. 협연자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파리국립오페라에서 동양인 최초로 관악 부문 종신 최고 수석을 맡으며 ‘동양인은 관악기에 약하다’는 편견을 깬 주인공이기도 하다. 12일 예술의전당 공연 외에도 의정부(16일), 성남(21일) 등 전국 투어가 예정돼 있다.

최경환 대표는 “유럽에서 배운 클래식의 깊이를 한국 관객에게, 또 한국인의 저력을 유럽에 들려주며 세계적인 챔버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혜 음악감독은 “유명 협연자에 기대기보다 우리 단체의 색과 실력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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