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찍었는데 인간의 감정 보이네"…가디언이 주목한 한국 사진작가

2025-06-12

"이 작가의 탁월함은 그의 무르익은 솜씨(her technical mastery)에서 나온다. 그 안엔 어린 시절에 서예를 하고, 대학에선 손으로 흙을 만지며 도자기를 빚은 그만의 예술적 여정이 녹아 있다."

런던에서 열린 한 한국 사진작가의 전시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호평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이정진(64)씨다. 이씨는 런던 헉슬리-팔러 갤러리(Huxley-Parlour Gallery)에서 지난 6일부터 전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30년 동안 작업해온 이씨가 영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이씨가 지난해 아이슬란드에 머물며 촬영한 작품 10점을 소개한다.

가디언은 5일 "작가의 독특한 배경은 그의 이미지를 해독하는 데 중요하다"며 "한국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전통 서예를 배웠고, 이후 서울 홍익대에서 공예(도자)를 전공했다"고 이씨를 소개했다.

이씨의 사진 작업에 대해 논하면서 서예와 도예 작업을 언급한 것은 이씨의 작품 이미지가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고 독특한 질감을 보여주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이씨는 한지위에 굵은 평붓으로 감광유제를 발라 흑백사진을 인화하고 이것을 다시 고화질로 확대한 뒤 스캔하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완성한다. 신문은 "한지에 사물과 명상적 풍경을 인화하며 수묵화와 드로잉 느낌의 질감 효과를 내는 독특한 형식을 개발했다. 특히 ‘이름 없는 길’ 연작을 하면서 톤과 색감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암실작업을 반영한 디지털 사진작업의 지평도 열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1980년대 후반 그가 1년간 매달렸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서부터 현대 사진 거장 로버트 프랭크(1923~2019)와의 인연에 대해서도 함께 전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잡지 '뿌리 깊은 나무'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는 1987년 울릉도에서 우연히 만난 심마니 노인과 그의 아내의 삶을 1년에 걸쳐 기록했다. 이 작업 이후 그는 미국에서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 활동했다.

이어 1990년대에는 미국을 여행하며 황량한 사막 등 풍경을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가디언은 이정진은 그 풍경에 있는 바위, 나무, 바람 등의 요소를 하나의 초상화처럼 담아낸다"며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초상인 동시에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초상이 되기도 한다"고 썼다. 이어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작업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곳만의 풍경을 인간의 모든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듯이 담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각은 이씨가 지난 202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이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문학에 비유하면 내 사진은 시(詩)에 가까울 것"이라며 "내가 찍는 대상인 바위나 흙, 나무 등은 시의 소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씨의 런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작업은 이미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호주 국립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씨는 2016년 스위스 벤터투어미술관에서 대규모 회전을 열었으며, 이 순회전은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으로도 이어졌다. 이씨의 런던 전시는 7월 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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