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또 이념논쟁…"교과서=경전 인식이 가장 큰 원인"

2024-09-01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할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지난달 30일 공개된 이후 교육계엔 다시 ‘이념 논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각 학교는 9종의 한국사 검정교과서 중 하나를 오는 10월까지 채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친일·종북 역사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질 조짐이 일고 있어서다. 한 고교의 역사 교사는 “각 학교의 관리자나 교사가 교과서에 수록된 자료의 양과 질, 편집 등을 우선하기보다 이념적인 성향에 따라 교과서를 선택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승만·친일파 미화 논란…채택 절차에 갈등 불씨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 이번 9종의 한국사 교과서는 각각이 채택한 내용과 표현 방식에 대해 보수·진보 진영이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모든 교과서가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수 진영의 문제 제기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일부 교과서는 위안부 문제를 너무 적게 다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에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역사 속 인물의 친일 행각에 관해 ‘이들이 왜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자’는 내용을 담아 우편향 논란이 일고 있다.

정권마다 논란…반복되는 ‘교과서 전쟁’

이번 논란은 최근 10년간 네 번째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갈등 중 하나다. 2013년엔 교학사 역사교과서(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가 갈등에 불을 지폈다. “식민 지배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취지의 표현이 문제가 돼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일선 학교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2015년엔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우편향 비난에 부딪혔다. 2016년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서술하며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고 검정 체계로 회귀했다. 이때 바뀐 일부 검정교과서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서술을 누락한 사례 등이 ‘좌편향’ ‘친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교과서 경전화, 경직된 프레임 만들었다

반복되는 한국사 교과서 갈등 앞에서 교육계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교과서를 ‘경전’처럼 인식하는 교육 현실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그 경직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역사 교사는 “교과서는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로 학교 현장에서 교육의 기본이 된다”며 “특히 시험과 입시가 연결된 상황에서는 교과서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선 교사의 정치적 중립에 민감한 사회 풍토가 경직성을 강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안으로는 “교과서 자유 발행”, “교사의 자율성”

교육계 일각에선 ‘교과서 자유 발행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행 검정 제도가 국정제보다 진일보한 형태이지만, 검정 기준에 따라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 발전 수준이 높은 일부 국가들이 도입한 자유 발행제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교과서 선택권을 시민들에게 부여한 제도”라면서 “교과서의 집필, 채택, 교육은 지식의 생산·유통·소비 과정과 같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 중심의 획일화된 수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획일화된 수업 대신 교사의 자율성이 높아지면 역사교과서 갈등을 교육 현장에서 중화시키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는 기능이 포함된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도입되면 교과서 하나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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