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일·가정 양립 제도 개선의 하나로 공공기관별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 수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재부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여성을 도구화한다’는 내부 지적이 나오자 재검토에 나섰지만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저출생의 책임을 떠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기재부는 기관별 출생아 수와 ‘18~49세 가임기 여성 직원 수’를 공시항목으로 담은 ‘공공기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공문을 지난해 12월 328개 공공기관에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문에는 출생아 수를 가임기 여성 수로 나눈 출생률까지 기록하고, 남성 직원의 배우자까지도 ‘18~49세 여성’에 포함하도록 했다.
‘기관별 출생률’ 공시 양식은 향후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심사를 거쳐 확정되고 2분기 중으로 알리오 홈페이지에 공시될 예정이었다. 해당 지표가 그대로 기관 운영 평가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건 아니지만 기재부 방식대로 공시하지 않으면 공공기관 평가 점수가 깎인다.
기재부는 그간 일·가정 양립 지원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각 공공기관별 육아휴직자 수, 직장어린이집 운영비 등 7개 항목을 공시해왔다. 지난해부터 공개 항목을 질적으로 확대한다며 가임기 여성직원 숫자와 출생률, 육아휴직자 직장 유지율·어린이집 수·가족친화 인증 여부 등 4개 항목 신설키로 하고 공공기관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공시 항목이 알려지자 공공기관 내부에서는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공공기관 직원 A씨는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 숫자 공개가 일반인은 물론 내부 직원에게도 일·가정 양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라며 “여성을 단순히 출산의 도구로만 여기는 시대착오적 프레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생 통계를 작성하는 통계청도 가임기 여성 수를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임기 여성직원 수와 남성 직원의 배우자 수까지 공시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발상을 두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재생산 권리를 여성이 아닌 국가가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예산을 얼마 투입했으니 어느 정도의 산술적 성과가 나야한다는 기재부식 경제논리”고 지적했다.
저출생 이슈를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씌우는 정부의 성차별적 인식 논란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2016년 행정안전부는 출생율을 높이겠다며 ‘전국 여성 가임기 여성수를 나타낸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당시에도 여성을 출산도구로 본다는 사회적 비판이 이어지자 철회한 바 있다.
논란이 되자 기재부는 뒤늦게 출생률 지표 신설을 재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의견수렴 단계로 아직 지표 항목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출생 지표 관련해서는 공공기관과 부처 내부에서 프라이버시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재검토 들어갔다. 향후 공운위 등을 거쳐 지표가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