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개성의 K-팝 2세대 걸그룹에 대한 반작용으로 초창기 3세대 K-팝 걸그룹은 청순 계열이 대세였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걸그룹 '오마이걸(OH MY GIRL)'은 청순 계보 중에서도 '아련 몽환' 영역을 맡았다.
아련 몽환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무엇을 찾아 꿈속을 헤매다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럼에도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균형의 애틋한 미학이다.
오마이걸이 지난 19~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친 데뷔 1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 '2025 오마이걸 콘서트 '밀키 웨이'(OH MY GIRL CONCERT 'Milky Way')'는 이런 정서를 한껏 머금은 자리다.
'다섯 번째 계절'과 '비밀정원' 같은 대표곡은 비밀을 꼭꼭 숨겨둔 뒤, 마음 한 켠에 꽁꽁 싸맨 듯한 가슴 뻐근함을 선사했다. 오마이걸 정체성을 일부 지은 작사가 서지음이 노랫말을 붙인 미공개곡 '일기예보'도 이날 베일을 벗으며, 그 결 위에 놓였다. 사무침은 인위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렇게 팀의 얘기가 쌓여야 가능하다.
오마이걸 표 청순이 특히 어떤 위력을 품는지 설명하기 위해선 '한 발짝 두 발짝' 무대를 보면 된다. 사뿐사뿐, 나풀나풀 등과 비슷한 모든 수식어로 형용이 가능한 이 노래는 오마이걸이 그린 그림은 청순에 남다른 리듬과 어감을 부여한다. 이는 '살짝 설��어'와 '던 던 댄스(Dun Dun Dance)'의 결로 나아간다. 삶의 긍정을 향한 도움닫기인 셈이다.
이처럼 오마이걸의 청순은 세상의 팍팍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되돌아볼 여운과 여백을 준다. 이건 순수함을 확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몰찬 세계를 부정하기 위한 일종의 뭉근한 승리 서사다.
걸크러시처럼 세상에 맞서는 여성의 큰 승리 서사는 쾌감을 주고, 일생에서 그럼에도 꿋꿋한 청순 걸그룹의 작은 승리 서사는 일상을 버티게 만든다. 밤하늘을 수놓으며 우리의 길을 비쳐주는 은하수(Milky way·밀키웨이)처럼.
사실 삶엔 단호한 승리도 단호한 패배도 없다. 그러므로 청순을 내세우는 팀이 유약하거나 K팝 걸그룹 서사의 한 면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마이걸은 10년을 지켜온 K팝 청순 걸그룹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건 든든함으로 수렴된다.
효정·미미·유아·승희·유빈·아린 오마이걸 여섯 멤버가 이날 펑펑 눈물을 흘린 건 본인들에 대한 연민이 아닌 팬덤 '미라클'에 대한 고마움의 연대감이 벅차 올라서였다.
유빈은 "19세에 데뷔했는데 29세가 됐다. 여러분에게 보호 받던 소녀가 이제는 여러분들을 위로해드리는 어른이 됐다. 곁에서 지켜드리겠다"라고 약속했다.
지난 9일 공개한 10주년 기념 싱글 '오 마이(Oh My)'가 그 언약의 징표다. 서지음과 미미가 공동 작사한 이 곡은 미라클과 유대감을 노래한다. 오마이걸의 히트곡 흔적이 곳곳에 담긴 아카이브이기도 같기도 하다.
"너와 함께할 또 다른 계절이 / 불쑥 다가와 날 향해 인사해" 오마이걸 10주년은 또 다른 계절을 안정적으로 맞이할 깊은 바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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