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HL 그룹 회장, “아이스하키는 힘과 열정의 원천, 하키가 나를 지켰다”

2024-12-22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내 인생이 아이스하키와 닮았다. 아이스하키는 에너지와 열정의 원천이었다.”

엄청난 아이스하키 팬인 HL그룹 정몽원 회장(69)이 HL 안양 아이스하키 클럽 창단 3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일 서울 시그니엘에서 열린 창단 기념식에서 “아이스하키는 갑옷, 투구를 쓰고 빠르고 강하게 전력으로 싸우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종목”이라며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HL 안양은 1994년 12월22일 ‘만도 위니아’라는 이름으로 창단됐다. 당시 사장인 정 회장은 운영비가 많이 들고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후원을 반대한 그룹 이사회를 설득했다. 정 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에서도 아이스하키팀을 지켰다. 자동차 부품 회사 만도를 매각하고 만도기계가 그룹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팀은 1998년 창단 최초로 한국아이스하키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IMF 한파와 기업 경영난 속에 거둔 감격스런 첫 우승. “아이스하키가 인생의 에너지”가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2002년 오일뱅크 팀이 해체됐고 2003년에는 동원 드림스도 문을 닫았다. HL 안양이 남은 유일한 팀. 정 회장은 일본과 힘을 합해 2003년 연합 리그를 창설해 돌파구를 찾았다. 정 회장은 “우리가 리그 초반에는 대패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HL 안양은 아시아리그 1차전에서 1-11로 대패하는 등 첫시즌 6승10패로 5개 팀 중 3위에 그쳤다. 그래도 정 회장과 HL 안양은 계속 도전했고 2009년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우승 타이틀을 처음으로 거머쥐었다.

정 회장은 2011년 다시 한번 힘을 낼 소식을 접했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것이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의 꽃. 정 회장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첫번째 올림픽 출전을 꿈꿨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한국의 기량이 떨어진다며 올림픽 출전에 난색을 보이자 정 회장은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에 온 힘을 쏟았다. 2010년 33위에 머문 세계랭킹이 8년 만에 16위까지 올랐고 한국은 자격으로 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한국은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4전전패(3득 19실)를 기록했다. 앞선 2017년 덴마크세계선수권에서도 7전전패(4득48실)에 머물렀다. 정 회장은 “세계 강호들과 12번 맞붙어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지평이 열린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2022년 5월 IIHF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아이스하키는 나와 그룹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데 에너지와 열정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내년이며 칠순이 된다. 그래도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정 회장은 “2018년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 순간을 맛봤지만, 성공까지 갈 길이 아직 멀다”며 “좋은 지도자들이 많고 저변이 넓어졌다. 체계적인 유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설을 확충하면 한국 아이스하키가 최고 인기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정인영 명예회장의 정신을 상기했다. 정 회장은 “선친께서 ‘학여 역수행주 부진즉퇴(學如 逆水行舟 不進則退)’라는 말씀을 강조하셨다”며 “나도 새로운 걸 다시 준비한다는 각오로 가열차게 뛰겠다”고 다짐했다. ‘배움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밀린다’는 뜻으로 정 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는 문구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국군체육부대, 대명, 하이원이 모두 해체됐고 HL 안양만 남았다.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정 회장이 만일 이사회 반대에 굴복해 하키팀을 만들지 못했다면, IMF 금융 위기 속에 팀을 없앴다면, 마지막 남은 팀으로 운영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한국 아이스하키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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