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어떻게 기업을 볼 것인가

2024-07-02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문제가 SK 경영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최 회장측은 항소심에서 1조3천808억원의 재산분할 판단에 영향을 미친 주식가치 산정에서 고 최종현 회장의 기여도에 비해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가 10배 높게 책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노소영 관장의 내조 기여도가 과다하게 책정되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달 17일 판결문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회장 측 변호사는 "6공의 유무형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법원 판단은 상고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이끈 한 축이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귀속기업의 불하뿐만 아니라 산업화 시대 정부주도형 경제계발계획의 시행과정에서 권력과 유착하고 금융 및 외환 등의 특혜에 의해 재벌로 성장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재벌을 이야기 할 때 정경유착이라는 주홍글씨가 늘 따라 붙는다. 한때 정치권의 지원을 받아 대기업으로 성장한 재벌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혁신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감안한다면 정경유착이 기업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SK그룹은 1942년 만들어진 선경직물주식회사로부터 시작된다. 직물수입을 하던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한 회사이며, 앞 글자를 따 선경으로 명명했다. 본사는 종로 1가에 두고, 공장은 수원 평동에 자리잡았다.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고 최종건 회장은 자기집 이웃에 있던 선경직물에 취직한 후 기계수리반 책임자가 되었다. 해방직후 그는 선경직물자치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1953년 7월에 귀속재산이던 선경직물을 공동인수한 후 부친의 도움을 받아 공동명의로 불하받은 사람들에게 프리미엄을 주고 단독 경영자가 되었다.

선경직물이 생산한 양복 안감의 주요 판매처는 동대문시장이었다. 개업초기에는 사장이 직접 동대문시장을 누비면서 판로를 개척하고 배달했으나, 품질관리를 철저하게 함으로써 직물상가에 인기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대리상들이 수원까지 찾아왔다. 이 시기에 수원농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전쟁으로 휴학 중이던 동생 최종현도 합류했다. 선경은 봉화무늬가 새겨진 이불감을 만들어 전국을 석권하는 인기품이 되었으며, 한복 원단 깔깔이를 생산함으로써 선경직물은 유명세를 탔다. 마당 원가 150원 짜리를 7백 원에 팔았으며, 수입품은 8천 원이 넘었기 때문에 물건을 내놓기 바쁘게 팔려나갔다.

오늘날 선경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기업의 인수합병이다. 1973년 워커힐호텔, 1980년 대한석유공사, 1993년 한국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그리고 2012년 SK하이닉스를 인수했다. 먼저, 워커힐 호텔(현 그랜드 워커힐 서울)은 오키나와나 대만 등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주한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대규모 휴양시설이다. 6.25전쟁 당시 참전했다 전사한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워커힐호텔은 선경의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선경이 매출액에서 재벌 랭킹 5위에 올라서게 된 것은 1980년 12월 대한석유공사 인수이다. 정부가 유공의 민영화 방침을 결정하자 재벌들이 인수경쟁에 뛰어들었다. 경쟁이 심할 것으로 예상한 정부는 인수조건에 대한 기본원칙을 세웠다. 선경이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인수전략이 적중한 것도 있지만 정부에서도 특정 재벌의 비대화를 견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세간에는 선경 그룹 전체의 매출액보다 유공의 매출액이 더 많았기 때문에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은 격이 되었다고 했다.

1992년에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에 대한 특혜라는 비난에 부담을 느껴 자진 반납하는 형식으로 철회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함께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당시 전경련 최종현 회장의 선경이 인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SK텔레콤이 3조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텔레콤이 많은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은 통신산업 특성상 매월 현금이 수천억원씩 들어오는 알짜배기 회사였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입수합병을 통해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무명의 섬유기업 경영자가 굴지의 재벌로 부상한 것은 정경유착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기업성장에 큰 역할을 미친 것은 설립자의 기업가정신인데,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기업가정신이 퇴색될까 우려된다. 기업도 유기체이므로 생로병사를 겪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군가 나를 대신할 수 없지만 기업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하다. 굴레에 갇혀 작은 이익에 집착하게 되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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