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낱말

2024-10-10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랑의 손, 사랑의 눈빛, 사랑의 마음.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박애니 자비니 하는 종교적 키워드도 사랑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 어둠과 고통 속에 갇혀 있는 사랑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손길, 인간 구원의 빛이 종교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사랑 아닌가.

활활 타오르는 젊은 연인 사이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언 손을 잡아주며 온기를 전하는 것이 사랑이고, 쇳덩이처럼 차고 굳은 가슴을 훈훈히 데워주는 훈김이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인정이 스미는 따스한 에너지다. 장애인에게 스며드는 마음처럼 애틋하고 인간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저녁놀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노인은 참 고적하다. 그런 어른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처럼 살가운 것은 없으리라. 찬바람에 쓸리는 도시의 거리, 구세군의 자선냄비 앞에 걸음 멈춘 사람들의 얼굴은 숭고하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할 것 없이 환한 얼굴들이다. 그들을 거기 멈추게 한 것이 사랑이니까 그런다. 옷깃에 꽂은 빨간 사랑의 열매는 값으로 칠 수 없게 탐스럽고하다.

비단 그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의자를 비워두는 일이기도 하다. 막연한 기다림이어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그대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한 기다림처럼 따뜻한 것이 있을까.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신명 나게 한다. 알 수 없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샘솟는 사랑의 힘이다.

온몸 기울이며 다가갈 때 사랑은 더욱 빛난다. 기다림에 지치더라도 기다림에 주저앉지 말고 기다림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기다림의 대상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기쁨을 넘어 희열이고 환희다. 그때 우리는 차라리 자지러져도 좋다. 사랑의 기쁨을 몸으로, 가슴으로, 영혼으로 누렸을 테니까.

때로는 누군가가 당신을 부르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리운 누군가를 불러 볼 일이다. 미지칭의 그 누군가를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부를 일이다. 나이를 떠나서, 혹은 하고 있는 일의 어떠함으로 구애받을 필요 따위는 전혀 없다. 적극적이라야 한다. 적극적이지 않으면 삶은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으니까.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밋거리였다.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낱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등을 차지한 것이 ‘사랑’이었다. 수많은 우리말 가운데 무려 21.9% 차지했다. 절대적 우세다. 전국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전문기관이 주관했다 하니, 신뢰도가 높다. 이어 ‘미리내, 우리, 서로, 행복, 기쁨’으로 서열이 매겨져 나왔다.

은하수의 다른 말인 ‘미리내’를 뺀 나머지 네 낱말의 뜻과 뉘앙스를 음미해 보자 싶었다. 그러니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인처럼 사랑을 소중한 가치로 하는 삶, 그것의 총체적 실현을 위해 몸을 던지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의식의 공간에 먹물처럼 번진다.

기다리고만 있어선 안 된다. 누군가를 위해, 그가 당도해 잠시 지친 몸 쉴 의자 하나 마련해야겠다.

사랑의 작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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