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323)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중 한 명으로, 32세라는 짧은 생애에도 그리스에서 인도 북서부까지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군사적 성취를 넘어 정복지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독특한 통치 철학에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로 즉위하고(그림1), 페르시아에서는 현지 전통 의복을 착용했으며, 인도 불교 문화권에서는 금강역사(그림2)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포용 정책은 단순한 정치적 전략을 넘어, 서로 다른 문명 간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 알렉산더의 선구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는 무력으로 정복한 영토를 문화적 융합을 통해 진정한 제국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 신의 아들이 된 외국인 왕: 알렉산더의 이집트 정복 전략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2년 페르시아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를 정복했다. 당시 이집트는 약 200년간 페르시아의 억압적 통치를 받아왔기에, 이집트인들은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환영했다. 정복 후 알렉산더는 정치적으로 탁월한 조치를 취했는데, 현지 전통에 따라 자신을 '파라오'로 선언하고 이집트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현지 신들을 공경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문화적 포용 정책은 이집트인들의 자발적 지지를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이집트 파라오로 변신한 알렉산더: 룩소르 신전 부조의 상징성
필자는 지난 2월 룩소르(Luxor) 신전에서 파라오로 묘사된 알렉산더의 부조를 확인했다. 이 부조는 알렉산더가 태양의 신 아몬(Amon)에게 성수(聖水)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그림1) 알렉산더의 왼손에는 권위의 상징인 와스 홀(Was Scepter)이 쥐어져 있는데, 이 홀은 상단부가 동물 머리 형태이며 하단부는 갈라진 포크 모양으로 권력과 지배력을 상징한다. 아몬 신은 긴 깃털 왕관을 쓰고 있으며, 발기된 성기가 특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성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수용했으며, 이를 자기 재생, 부활, 그리고 생명 창조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부조에서 아몬 신은 알렉산더보다 더 크고 위엄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신의 우월적 지위를 시각화했다. 이 파라오가 알렉산더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부조 좌우에 상형문자(hieroglyphics)로 동일하게 새겨진 알렉산더의 이름이다.(그림3과 그림1 홍색 작은 원)


△ 적의 옷을 입은 정복자: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문화 수용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정복 과정에서 상징적 권력 중심지인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페르시아 문화를 존중하고 융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의 왕관과 화려한 로브 등 페르시아 왕실 의복을 착용했는데,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충격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문화 수용을 직접 보여주는 유물은 제한적이나,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BC 100년경 제작 추정)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그림4) 이 모자이크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알렉산더는 그리스식 갑옷을 입고 있지만, 전체적인 배경과 구성은 페르시아 미술의 영향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어, 그의 문화적 융합 정책의 시각적 증거로 해석된다.

△ 금강역사가 된 정복자: 불교 수호신으로의 변신
알렉산더 대왕의 진정한 문화적 리더십은 그가 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로 재탄생한 예술적 표현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아프가니스탄 하다(Hadda) 지역의 불교 사원 타파 쇼토르(Tapa Shotor)에서 발견된 조각상은 알렉산더 대왕의 특징적인 얼굴 윤곽, 곱슬거리는 머리 스타일, 그리스식 복장과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중앙의 주요 위치가 아닌 불교 사원의 주변부에 배치되어 있다.(그림5) 이러한 위치는 그가 붓다를 보호하는 금강역사(Vajrapani)의 역할로 재해석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화적 변용은 기원전 4세기부터 발전한 간다라 문화권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설립되었고, 이 지역은 그리스 문화와 현지 문화, 특히 불교가 만나는 융합의 장이 되었다. 간다라 미술은 이러한 문화적 혼합의 대표적 산물로, 그리스의 사실주의적 조각 기법과 불교의 정신적 주제가 결합되어 독특한 예술적 표현을 탄생시켰다. 타파 쇼토르의 알렉산더 조각은 이러한 문화 융합의 극적인 예시이다. 전통적인 그리스 영웅의 이미지는 불교적 맥락에서 재해석되어, 세속적 정복자가 정신적 수호자로 변모한 것이다.

△ 문화적 포용: 알렉산더의 혁신적 리더십 전략
알렉산더 대왕의 문화적 포용 정책은 고대 세계에서 전례 없는 혁신적 통치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당시 일반적이었던 정복자 중심의 문화 이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알렉산더의 다문화 리더십은 현대 글로벌 사회의 리더십 과제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은 현대 다국적 조직과 글로벌 사회의 핵심 과제이다. 알렉산더는 2300년 전에 이미 이러한 다문화적 접근법의 잠재력과 도전을 경험했던 것이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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