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본 스님의 세상 다시 보기]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2025-12-25

육아휴직이 당연한 권리처럼 말해지는 시대지만, 이 말은 일부 노동자에게만 해당된다. 울산 곳곳에서 가게 문을 열고 하루를 살아내는 수많은 자영업자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제도다.

육아 때문에 잠시 쉬고 싶어도, 문을 닫는 순간 소득은 0원이 아니라 적자가 되고, 단골은 떨어지고, 플랫폼 가게 노출은 순식간에 밀린다. 아이를 낳는 일보다 가게를 지키는 일이 더 큰 싸움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출산을 위해 잠시 영업을 중단해도 행정상 ‘폐업’으로 간주돼 지원이 끊기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자영업자는 육아휴직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 제도가 열려 있다 해도 실효성은 없다. 사회가 겉으로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을 나누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저출생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절에 있다 보면 부모들이 아이를 안고 힘겹게 찾아와 상담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가게가 있어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하루만 문을 닫아도 적자가 되니 몸이 부서져도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부모의 지친 얼굴 뒤에는 그 아이의 삶이 있다. 출산율이 낮다고 걱정하기 전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왜 누군가에게는 빈곤과 피로를 견디는 노동이 되어버렸는지 먼저 질문해야 한다.

울산은 자영업 비율이 높은 도시다. 지역의 자영업 부모가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울산의 미래도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울산이 먼저 답을 찾아야 한다.

자영업자를 위한 대체 인력 지원, 출산·육아기 임대료와 공과금 완화, 긴급 상황에 쓸 수 있는 돌봄 바우처,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와 연계한 긴급 돌봄 체계, 출산 휴업 시 가게의 온라인 노출을 보호해주는 플랫폼 협력 모델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무엇보다 ‘일시 휴업’을 ‘폐업’으로 처리하지 않는 유연한 행정이 필요하다. 울산이 이런 구조를 만들면, 자영업자도 육아휴직을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육아는 개인의 의지로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다. 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그 부모를 지탱해주는 사회적 품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은 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쉴 권리다. 자영업자라고 해서 그 권리를 갖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울산이 먼저 바뀌면 대한민국도 따라올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모두가 함께 지탱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명본 스님 (사)울산그린트러스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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