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의제로 ‘시민 참여’에 주목했다. 대통령 권력 분산, 선거제도 개편 등 제도 개선뿐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더욱더 폭넓게 보장하고, 음모론이 발붙일 수 없도록 시민교육을 강화해 민주주의 성숙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경향신문이 신년을 맞아 국내 대표적인 정치학자 20명으로부터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고민해야 할 의제들을 제안받은 결과 시민 참여를 확대하자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을 때 시민들이 ‘가드레일’,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을 인정하고 제도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탄핵 시위에서 특히 청년들을 포함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복원력, 탄력성을 보여줬다”며 “존 킨이라는 정치학자는 이걸 ‘파수꾼 민주주의’라고 얘기를 하는데 (권력이) 용인 범위를 넘어설 때 시민들이 광장에 나가서 지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과연 안전한가, 한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 출신 정치학자 존 킨이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주장한 ‘파수꾼 민주주의’란 정부 등의 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 시민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오만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로 기능한다는 취지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는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권력에 맞섰다.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 등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국회 앞 촛불집회에는 42만명이 참여했고, 그중 3분의 1은 2030 여성이었다.
권력 남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책 결정, 공천 단계부터 시민 참여를 늘리자는 의견도 많았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정책 의사결정 과정은 너무 엘리트 중심”이라며 “국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교육 등을 통해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계엄·쿠데타는 부정선거론 같은 음모론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에서 비롯됐다”며 “공론장에서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시민교육, 정치교육을 장기적으로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이번 계엄 사태를 보면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내면화했고 굉장히 성숙했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자꾸 이를 이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결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의 매개가 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성화를 두고는 상반된 의견이 나온다. SNS는 계엄 당일 밤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집결하고, 남태령 시위가 시민집회로 확대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평상시에는 정치 양극화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가 계엄 사태에는 굉장히 긍정적인 힘을 발휘했는데 평시에는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유튜버가 팬덤정치를 확산하고 팬덤정치가 다시 유튜버들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