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혹은 원영적 사고

2025-02-03

5년 전 코로나가 터졌을 때 ‘코로나19의 실버라이닝’이란 칼럼을 썼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지만 애써 찾아보면 겨자씨만 한 희망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에서 추경에 대한 이견이 사라졌다는 것 등을 거론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도 한 줄기 빛은 있다(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고 하지 않는가. 지난해 유행했던 ‘원영적 사고’도 같은 맥락이다. 빵집에 줄 서서 기다렸는데 하필이면 내 앞에서 빵이 떨어졌다. 보통은 운수 나쁜 날을 탓할 터인데, 아이돌 장원영은 “갓 구운 새 빵을 받게 됐네. 역시 행운은 나의 편”이라고 했다던가. 이런 초긍정주의는 ‘원영적 사고’로 불리며 인터넷 밈(유행의 아이콘)이 됐다.

공감대 커진 추경은 시기가 중요

대통령 부재로 정책의 공간 생겨

“경제는 정치인이 자는 밤에 성장”

계엄·탄핵 정국에 트럼프의 관세 전쟁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에 시름이 깊다. 어제 증시는 급락했다. 나쁜 뉴스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경제 펀더멘털이 좋지 않고 경제 주체의 심리도 쪼그라들었다는 방증이다. ‘원영적 사고’에 기대 솥바닥을 박박 긁는 심정으로 경제의 ‘실버라이닝’을 찾아봤다.

우선 코로나 초기처럼 추경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다. 야당이 추경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민생지원금 요구를 접었다. 여당은 민주당의 감액예산안 강행처리 사과부터 하라고 쏘아붙였는데 그럴 일이 아니다. 이번 추경은 빨리 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를 살리고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을 찾아내고 올해 성장률 전망 하락을 고려해 세수 펑크가 또 나지 않도록 세입 규모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정부의 한 해 살림을 조기에 확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대통령 중심 국가에서 대통령의 부재는 분명 비정상이다. 정책의 최종적인 교통정리는 누가 하며, 부처 간 칸막이는 누가 뚫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경제정책의 정치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2년 전 이맘때다. 치솟은 난방비에 여론이 들끓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발언에 ‘중산층’이 포함되자 경제부처가 난감해졌다. 중산층까지 지원하는 건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 가스나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수요를 줄이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한다는 정책 기조에 맞지 않는다. 당시 대통령실 설득하느라 경제관료들이 고생 좀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대통령이 없으면 공매도 금지처럼 표심만 노린 무리한 정책도 나올 일 없다.

합리적인 정책이 정치적인 이유로 구부러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책을 다뤘던 고위직은 “정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정무라인의 주장은 힘이 세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툭하면 ‘국민 눈높이’를 핑계로 연금개혁 등을 미뤘다. 대통령의 부재는 정치 외풍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합리성을 훼손하지 않는 뜻밖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서양 속담을 인용하며 정치의 경제 개입을 반대했다.

의회 권력인 민주당이 중도 표심을 잡기 위해 실용을 내세우며 오른쪽 깜빡이를 켰다. 기업이 희망하는 민생입법이 통과되는 정책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입법이 아니어도 정부가 시행령과 규칙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하지 말라’는 금지와 규제는 주로 정부의 손아귀에 있다. 얼마 전 국무조정실이 적극 나서 기아 소하리 공장 규제를 54년 만에 풀어준 것처럼 기업을 위해 과감하게 나서라. 정치권력의 공백이 빚어낸 뜻밖의 기회를 복지부동으로 낭비하지 말고 부처와 관료의 존재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나중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통령 없는 무두(無頭) 시절의 부처 성과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공무원의 적극 행정은 면책하겠다는 감사원의 발표도 이런 시국엔 다시 나올 만하다. 원영의 어릴 적 영어 이름에서 나온 행운의 주문을 나도 외워 본다. 힘들고 답답하지만 우리 모두, 럭키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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