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

2025-04-10

봄을 맞아 베란다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중 부피가 제법 큰 것들을 추려 집 앞에 내놓았더니 그야말로 한 무더기였다. 주민센터로 가 대형 폐기물 수거 신청서를 끊고 돌아오는데, 어느 가게 구석에 뜬금없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아직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4월이 되어 결국 봄을 맞이했고, 드디어 모두가 벚꽃놀이에 두릅이며 도다리며 제철 재료 이야기를 하면서 바뀐 계절을 이야기하는데, 초록색과 빨간색의 성탄 장식은 꽤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마 가게 주인이 계절이 변하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딱히 치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기야 내 지인 중 하나도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에 마땅한 여유 공간이 없어, 트리는 사시사철 한자리에 두고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만 장식을 달아놓고는 했다.

과자와 빵을 파는 곳에서도 철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종종 본다. 대형 제과점에는 봄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딸기 디저트가 냉장 쇼케이스를 장식하고 있고, 몽블랑이나 밤식빵 같은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들도 이제는 꼭 그 계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그런 ‘계절을 떠나보내지 않는’ 디저트가 한 가지 생긴 더 생긴 것 같다. 거리를 걷다 마주하게 되는 ‘힙한 듯’ 보이는 개인 매장들에서 찾을 수 있는 메뉴 중 하나로, 바로 ‘갈레트 데 루아’라는 파이다. 이것은 반죽에 아몬드 크림을 넣어 구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절 과자 중 하나인데, 프랑스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6일이 껴있는 주에 먹을 수 있는 전통 과자다. 파이 안에 ‘페브’라고 부르는 작은 도자기 인형이 들어있고, 파이를 나눠 먹다 자기 몫에서 페브를 찾아낸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왕 대접을 받으며 재미난 하루를 보내고는 한다. 대축일 즈음에는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길게 줄을 서 이것을 사가고는 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제과점의 진열대에서는 모습을 감춘다. 그 시기가 지나면 아몬드 크림을 넣고 만든 파이들은 ‘피티비에’니, ‘쇼송’이니 하는 이런저런 다른 이름과 약간씩 달라진 형태로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오래된 디저트가 한국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다가 SNS의 파급력 때문인지 최근 몇년 사이 작은 매장들의 인기 메뉴가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4월이라는 시기를 생각하면 ‘주님 공현 대축일’ 기념 디저트가 아닌 부활절 디저트가 보일 때이지만, 아마도 토끼 모양 초콜릿이나 둥지 모양 케이크는 아직 SNS 유행을 타지 못한 모양이다. 한동안 별것 아닌 그 과자의 모습이 신경 쓰여 주위 젊은 셰프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니 아무래도 이 아몬드 파이의 반죽 위에 칼로 기교를 부리는 맛이 크다는 것 같았는데,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예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은 분명 흐르는데, 크고 작은 풍경이 바뀌지 않는 것은 영 이상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면 그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이든, 제과점의 과자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치워버릴 것은 진작에 치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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