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의 계정공유] 밉지만 짠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2025-11-07

[비즈한국] 이처럼 직관적이고 노골적인 제목이 또 있을까.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김부장 이야기)는 키워드 하나하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한 계급의식을 보여준다. 서울에 사는데, 월세나 전세가 아닌 자가로 산다. 대기업에 다니는데 25년차 근속으로 부장까지 달았다. 거기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와 자랑스러운 아들도 있다. 아내는 대기업 부장 와이프답게(?) 전업주부이고, 아들은 명문 Y대생이다. ‘김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낙수(류승룡)의 상황은 겉보기에 남 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삶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낙수는 자신의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서열화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백정태(유승목) 상무의 300만원짜리 가방과 자신의 팀 정성구(정순원) 대리의 250만원짜리 가방 사이 가격대의 가방을 찾는 모습을 보라. 정성구 대리의 외제차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며 송익현(신동원) 과장의 경차에 반색하지만, 경차는 출퇴근용일 뿐 사실은 비싼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뒤로 넘어가는 김낙수다. 그러니 옆 팀 도진우(이신기) 부장이 백정태 상무와 같은 반포의 고급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넋이 빠지는 건 당연하다. 전세가 38억원에 매매가 68억 원인 아파트에 전문대 출신에 나보다 후배인 도진우가 자가로 산다니! 이 기가 막힌 현실에 넋이 나가 얼떨결에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돈만 수백 깨지는 ‘웃픈’ 상황을 맞는다.

끊임없는 비교로 행복하지 못한 것과 별개로, 김낙수의 상황 또한 위태위태하다. 지금껏 한 번도 진급 누락 없이 달려왔지만, 내년에 임원으로 승진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낙수는 임원 승진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듯 굴지만, 내심 도진우 부장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하직원들의 탓을 해보지만 실적은 물론 팀 분위기까지 도진우 부장 팀과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신경 쓰인다. 명문대생 아들 수겸(차강윤)이 졸업 후 대기업으로 입사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기가 찬다. 아들은 이름도 희한한 스타트업에서 직함도 어이없는 ‘최고 파괴 책임자(CDO)’를 맡기로 했단다. 아내 하진(명세빈)이 자신의 승진을 가늠질하며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는 모습도 거슬린다.

그럼에도 승진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김낙수. 그러나 회사는 일찌감치 김낙수를 내치기로 결정했다. 영업맨으로 현장에서 능력은 뛰어났지만, 팀을 진두지휘하는 관리자로 능력은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낙수는 성실하지만(회사에서 개근상이라니), 업무 스타일은 20세기의 그것과 다름없다. 자신은 예전 자신의 ‘꼰대’ 상사들 같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그 자신은 ‘꼰대’ 그 자체다. 팀원들의 재능을 북돋기보다는 자신의 시선으로만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불합리한 상사이니 회사가 그를 임원감으로 볼 리 없다. 이 와중에 김낙수에겐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회사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졌고, 말도 안 되게 겨우겨우 수습은 했지만 골프장 홀인원 기념사진이 대기업 통신사 3사의 담합으로 의심되는 빌미가 되어 백정태의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영업 실적을 쥐어짜며 희망을 놓치지 않지만 결국 아산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좌천된다. 

재미난 건 김낙수란 인물에게 드는 묘한 감정이다. 김낙수는 내 상사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나 남편으로도 요즘 기준으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다. 그럼에도 김낙수를 보고 있으면 짠내가 폭발한다. 분명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것이 모래성처럼 스러질 수 있는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것들임을 알기에 그렇다. 권위의식과 계급주의에 매몰된 김낙수지만, 비교하고 질투하고 옹졸한 동시에 여린 부분도 있는 보통의 사람임을 알기에 그렇다.

밉살스러운 면이 많지만, 샅샅이 뜯어보면 김낙수는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점이 큰 실수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다. 회사에 몸바쳐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 믿으며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온 인생을 누가 함부로 욕하겠나. 그러니 4화 마지막에 좌천행을 선고받고 “나 아직 쓸모 있는 놈이라고!”를 외치는 그를 보면서 자신을, 혹은 자신의 미래 모습을, 혹은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투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리라.

드라마 속 김낙수는 1972년생 혹은 빠른 1973년생일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 집계상 출생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에 태어난 그는 평생을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왔을 테다.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1970년생 유만수(이병헌)와는 동년배이며, 한 회사에서 25년간 일했고 결국 회사에서 밀려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부장 이야기’처럼 주말 밤 시간대 방영 중인 tvN 드라마 ‘태풍상사’의 주인공 강태풍(이준호)과는 동갑이다. ‘태풍상사’는 IMF가 터진 1997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어쨌거나 지금 대중문화에서 1970년대생, 현재 중년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IMF 시기 소설 ‘아버지’가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은실이’ ‘국희’ ‘왕초’ 같은 복고풍 드라마가 인기였던 것을 떠올려보라. 지금 현실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방증 같아서 ‘김부장 이야기’를 재미나게 보면서도 문득문득 두렵다. 위기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김낙수만이 아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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