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 2m가 넘는 이 사진을 전시장에서 실제로 마주하면 광활한 대자연의 한 장면처럼 시선을 압도한다. 그러기를 잠시, 들여다볼수록 몇 가지 질문이 일어난다. 만년설이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의 어디쯤이기에는 배경을 이루는 하늘이 우주처럼 까맣다. 사방을 밝힌 달빛의 흔적도 없다. 지구 밖이라 하기에는 눈이 내리는 행성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오묘한 이 풍경은 결국 어디서 본 듯하지만, 우리의 착시일 뿐 오직 사진으로만 존재한다. 한편 사진이라 부를 때는 분명 촬영한 대상이 있을 터, 그것은 노동에 가까운 작가의 수고로움 속에서 태어난다.
양승원은 사진 속 이미지 자원을 스스로 제작한다. 원하는 형태와 질감을 얻을 때까지 콘크리트를 굳히고 깨뜨린 뒤 촬영하는 식이다. 자연의 지각 작용 흔적과 유사해 보이도록 다양한 분말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다음 컴퓨터 렌더링을 통해 원하는 가상의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이미 촬영해 얻은 데이터들을 정교하게 합쳐나간다. 작업 제목인 ‘Overwrite(겹쳐쓰기)’는 저장 장치 속에 있던 정보에 다른 정보를 겹쳐 기록함으로써 본래 정보가 지워지는 방식을 뜻하는 전자용어다. 대신 양승원은 이런 의미와 달리 여러 이미지 정보를 겹쳐 본래 없던 시각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양승원의 작업에서 시각적 실재란 그가 연출해 촬영한 물질 이미지에 있을 뿐, 그 총합으로서의 결과물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양승원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컴퓨터 합성에 기대지 않고, 물리적 창작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이렇듯 자신의 작업을 실재와 허구의 경계에 머물게 하기 위함이다. 그의 연작 중에는 달이나 화성의 표면과 더욱 유사해 보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이 작품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뒤 유사 이미지 찾기를 실행하면 실제로 우주 탐사선들이 찍어 보내온 행성 사진들을 여러 장 보여준다. 보이는 대로만 믿으려는 우리의 시각 경험을 교란하고 싶은 작가의 시도가 인공지능에도 통한 셈이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