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 시티가 잠시 웃었다. 강등으로 우울한 이번 시즌 마지막 홈경기장에서 잉글랜드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새긴 ‘한 남자’가 떠났다. 레스터 시티 리그 우승을 이끈 주인공, 바로 제이미 바디(38)다.
2012년 5월 18일, 플리트우드 타운에서 레스터 시티로 건너온 날로부터 정확히 13년이 지난 이날. 그는 ‘여우 군단’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축복처럼 200번째 골로 작별을 고했다. BBC는 “기록과 감정이 완벽히 겹쳐진 순간”이라고 전했다.

18일 영국 레스터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입스위치 타운전 전반 39분, 제임스 저스틴의 침투 패스를 받은 바디는 단박에 수비를 제치고 골키퍼 알렉스 팔머까지 넘겼다. 공이 골라인을 넘기기 전, 킹파워 스타디움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터졌다. 마지막 바디 타임이었다. 바디는 골대 뒤 원정석으로 질주했다. 입에 손가락을 댄 채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더니, 바로 코너깃대를 뽑아 들었다. 악바리 같은 13년을 상징하는 듯한 세리머니였다. 바디는 “몇 번 놓치긴 했지만 JJ가 찔러줄 땐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며 “원정 팬석에서 온갖 욕설을 들었으니 당연히 거기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플리트우드 타운에서 100만 파운드 이적료로 이적한 바디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리라 누가 예상했을까. 바디는 모든 가능성을 박살 냈다. 레스터 시티는 2015-16시즌 정말 동화같이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바디는 간판 공격수로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24골을 넣었다. 득점왕 해리 케인(토트넘)보다 단 한골이 적었다. 바디는 레스터시티에서 잉글랜드축구협회(FA) 컵 우승,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4강, 챔피언십(2부리그) 우승 2회을 이끌었다. 그의 발자취는 레스터시티 구단 역사 자체였다. 바디는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근데 기분 좋은 롤러코스터”라며 “하이라이트가 너무 많았다.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우승? 정말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레스터는 지난 3년 동안 두 차례 강등됐다. 구단 운영을 둘러싼 팬들의 불만도 쌓였다. 하지만 바디는 늘 구심점이었다.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그는 클럽을 하나로 묶는 ‘감정의 닻’이었다. BBC는 “바디는 이제 팀을 떠나지만 현역 생활은 계속된다”며 “레스터는 바디 없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바디는 “좋은 선수들이 많고, 유망주들도 올라오고 있어 괜찮을 것”이라며 “나는 이제 관중석에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BBC는 “바디가 이끈 한 시대를 끝냈다”며 “전성기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았기에 박수받을 받을만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