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추대보다 윤석열 정리가 먼저다

2025-04-1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한 국민의힘의 구애(求愛)가 도를 넘었다. 조기 대선에서 만난 난공불락의 적수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꺾기 위해 한 대행을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 경제다. 한 대행은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제부총리, 주미 대사를 지낸 최고의 글로벌 경제·통상 전문 관료 경력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된 카드다.

8일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 이후 몸값이 치솟았다. 트럼프는 왜 그에게 출마 의사를 물어봤을까. 미국의 경제 패권을 지키기 위한 관세전쟁의 최종 승부수는 중국 압박이다. 그래서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기에 미국통인 한 대행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그가 국민의힘 취약 지역인 호남 출신이고, 진보정권에서도 중용됐던 인생 역정도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서면 가산점이 된다. 미국 대통령, CNN과 통역 없이 영어로 소통하는 그의 역량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다.

한 대행 대선관리·관세대응 직면

국힘의 대선후보 추대는 비상식

윤, 사과는커녕 경선에 구두 개입

이재명, 통합 위해 개헌 결단해야

하지만 하필 지금 그를 대선판으로 불러내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그에게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파면으로 초래된 국정 공백을 수습하고 조기대선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무한책임이 있다. ‘심판’인 그를 사무실로,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선수’로 뛰라고 보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대선과 경제위기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흔들리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고 싶다면 먼저 친위 쿠데타로 민주주의의를 파괴한 죄로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확실하게 결별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내란동조세력”이라고 비판하는 한 대행의 출마 명분이 일부라도 생긴다. 한 대행은 윤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내란방조 혐의로 수사받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포함한 두 사람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민주당은 “대행의 월권”이라고 문제 삼았고, 헌재는 권한쟁의심판을 진행 중이다. 윤 전 대통령을 정리하지 않고 정권 2인자였던 한 대행을 출전시키는 건 내란 프레임에 걸려드는 직행 코스다.

헌법재판소가 8대0 만장일치로 파면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저로 나와서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마세요”라고 했다. 탄핵에 반대한 경선 출마자를 격려했다. 또 다른 출마자에게는 “대통령을 하면서 배신을 너무나 당했다. 사람은 충성심을 보고 써야 한다”고 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다. 자신이 일으킨 평지풍파의 결과인 이번 대선판에 구두로 개입하고 있다. 한 대행 추대에 친윤계가 앞장서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윤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파면 이후 다시 출마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민심은 윤석열 출당(黜黨)을 원하는데 당사자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지 않고도 국민의힘이 또 정권을 잡겠다고 ‘심판’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홍구 전 총리에게 주미대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김영삼 정권에서 집권당인 신한국당 대표를 지냈고,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이홍구는 “정치 도의상 어렵다”며 적장(敵將)의 파격적 제안을 뿌리쳤다. 그러나 김대중은 포기하지 않고 “국가가 어려우니 지난 일은 잊고 함께 일하자”고 설득해 수락 의사를 받아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예일대 동문이고 미국 내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이홍구는 대미 외채협상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다.

김대중은 집권 직후 외교안보수석실을 정비하면서 수석 한 자리에만 자기 사람인 임동원을 임명했고, 김영삼 정권의 비서관·행정관 40여 명은 전원 유임시켰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야당·보수와 전 세계에 초당적 협력 의지를 보였다. 어제의 적에서 오늘의 동지가 된 김대중과 이홍구의 협력은 실용주의와 포용정치의 진수(眞髓)였다. 그러나 한 대행을 향한 국민의힘의 구조 요청은 국민이 아닌 정파를 위한 것이다. 정쟁과 분열의 치명적 도화선이 될 수 있다.

70%가 넘는 국민이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지지했다. 통렬한 반성을 통해 위기를 통합으로 반전시킬 기회였다. 하지만 당사자와 국민의힘이 거부했다. 이제 남은 통합 카드는 대통령 권력을 줄이는 개헌뿐이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과 야당의 극단적 대결정치를 상수로 만든 87년 체제를 청산하고, 황당한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헌정을 개혁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하겠다”고 한 약속을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며 번복했다. 분열과 적대를 통합으로 전환할 역사적 소명을 여기서 접을 수는 없다. 조기 대선의 후보들은 여야 합의로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지금의 대결정치가 계속되면 누가 집권해도 국정 운영은 파행을 겪고 대통령은 불행해질 것이다. 모든 주자가 개헌에 동의했다. 이재명 전 대표의 결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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