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90%가 '대표이사·의장' 겸직…갈길 먼 지배구조 개선 [시그널INSIDE]

2025-06-15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 시대를 내걸었지만 이를 위한 선결 과제인 지배구조 개선은 제자리 걸음이다. 주요 상장사 중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한 기업이 9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는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히지만 국내 기업은 이사회 의장을 맡을 사외 이사 숫자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은 이사회 의장의 40%를 사외이사가 맡고 있었다.

15일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에 따르면 올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제출한 비금융 상장사 509개사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은 곳은 68개사(13.4%)에 그쳤다. 지난해 12.9%에서 고작 0.5%포인트 늘어 사실상 정체됐다. 이는 국내 상장사 10개 중 9개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수장까지 맡아 스스로 경영을 감독하는 모순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 S&P 500 기업 중 39%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는데, 10년 전인 2014년(28%)에 국내보다 높았을 뿐 아니라 그후에도 상승했다. 주주 행동주의의 압박, 대규모 회계 스캔들의 교훈, 그리고 이사회 효율성에 대한 공감대가 맞물려 대표이사와 의장 분리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물론 일부 국내 기업들은 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SK(034730), POSCO홀딩스(005490) 등이 사외이사 의장 체제를 운영하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사유로 “사내이사들이 경영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020년 3월 처음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을 선임한 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005380)(정의선 회장), 한화(000880)(김승모 대표), CJ(001040)(손경식 회장), 네이버(이해진 창업자) 등 대다수 대기업은 여전히 창업주나 대표이사가 이사회를 이끈다. 이들은 신속한 의사 결정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고, 견제 기구나 장치를 마련해 둬 이사회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이 이사회 의장이 된 사유로 “그룹 회장으로서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및 경영 환경에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책임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며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계획은 없으나 이사회가 보다 더 경영감독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선방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설명과 달리 학계에서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없이는 이사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하는 통합형 이사회는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을 견제하기 어렵다”며 “이사회는 경영진의 제안을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해야 하지만, 조직의 최고 권력자가 회의를 주재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반대 의견 개진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꼬집었다. 대표와 의장을 분리하는 건 주주가치 제고의 출발점이란 분석도 있다. 독립적인 이사회는 특정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한 장기적 관점의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 기업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배당정책 사전 통지, 집중투표제 채택 등 15개) 준수율이 더 높다. 이들 기업의 준수율은 70.3%인 반면, 아닌 기업은 52.2%로 18.1% 포인트 낮았다. 포스코의 핵심지표 준수율은 100%고, 삼성전자도 86.7%로 주요 그룹사 중 최고 수준이었다. 반면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한화(46.7%), HD현대(73.3%) 등은 준수율이 떨어졌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가치 저평가를 해소하려면 외부 정책 뿐 아니라 내부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기업 스스로가 독립된 이사회를 통해 주주와 투명하게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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