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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경주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주십시오.”
25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경주APEC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 중인 경북을 방문했다. 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경북도청에서 열리는 ‘화공(화요일에 공부하자) 굿모닝 특강’에 강연자로 나서 ‘APEC 정상회의와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약 1시간 동안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경북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트럼프 당선에 불확실성 배가된 세계”
반 전 총장은 “오는 10월 말에 열리는 경주APEC에 오를 의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고위관리회의(SOM1)가 어제(24일)부터 시작됐다고 들었다”며 “제가 노무현 정권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던 20년 전에 부산에서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다시 한번 영광스러운 기회가 찾아온 만큼 행사가 크게 성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APEC 개최 이후 20년 동안 국제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며 “불확실성이나 불안정성이 배가된 가운데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취임하면서 이런 예측 불가한 일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지금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졌고,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얘기해 미국과 유럽 사이의 관계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기에 북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1만2000명 정도의 병력을 파견해 세계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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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야 하는 한국 정부가 탄핵 정국으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점을 반 전 총장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할 때 우리나라 조선업에 관심을 표하면서 해군 함정 유지·보수를 한국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지금 대통령 탄핵 재판 때문에 미국과 전혀 접촉이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여·야·정 경주APEC 성공에 힘 모아야”
이어 반 전 총장은 “전 세계 인구의 37%,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1%, 무역량 50% 이상을 APEC 회원국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APEC은 중요한 다자기구”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APEC의 기본 원칙인 자유무역질서가 교란 위기에 처한 시기인 만큼 이번 경주APEC 정상회의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PEC 회원국 중 가장 큰 경제 대국인 미국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협력에 관심이 없고 부정적”이라며 “탄핵 정국으로 ‘대행의 대행’이 국정을 맡는 이례적 일이 대한민국 역사에 벌어진 상황에서 여·야·정이 범국가적이고 초당적인 자세로 경주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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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지속 가능한 발전’도 여러 차례 거론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이 재임 중이던 2015년 12월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채택하는 등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국제협약이다.
반 전 총장은 “남태평양에 키리바시라는 섬나라를 가보니 바닷물이 도로까지 올라와 찰랑거리고 있었다. 키리바시 정부는 섬이 점차 물에 잠기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피지 땅의 일부를 사들여 나라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2100년이 되면 우리나라 연안도 해수면이 60㎝에서 1.5m까지 차오르게 될 텐데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개인의 작은 노력이라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