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맛난 음식과 상품, 놀거리 등 온갖 누릴 것들로 가득한 낙원 같은 곳이다. 풍요로운 내일로 향하는 특급열차 같다. 뭔가에 부딪히든, 속이 곪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리기에 여념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기도 하고, 멈추면 터지는 시한폭탄을 장착한 듯도 하다.
마지막 칸엔 물류·배달 노동자가, 가운데엔 호사를 좇는 소비자들이, 맨 앞 칸엔 절대자가 자리했다. 영화 <설국열차>(2013)를 연상케 하는 쿠팡의 폭주 얘기다.
“자신의 위치를 알라, 자기 위치를 지키라”는 총리 메이슨의 대사처럼, 각자 역할에만 충실하면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갈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열차 밖은 위험해!’라며 쉽사리 나갈 엄두를 못 내는 게 우리 현실이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대리점 배송기사 등 올해만 7명이 업무를 하다 숨졌다. 급기야 3370만명 회원들 이름,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까지 털렸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이 더디다.
이런 와중에도 쿠팡 월드의 절대자 ‘윌포드’ 김범석 창업자는 꽁꽁 가려졌다. 쿠팡Inc 이사회 김 의장은 의결권 73%를 거머쥔 ‘꼭두각시의 지배자’다. 쿠팡Inc가 쿠팡글로벌LLC를 100% 소유하고, 이 회사가 한국의 쿠팡을 100% 지배하는 구조다. 매출의 절대다수가 한국에서 일어나는데도 소유권은 온전히 미국 기업이다.
특히 김 의장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한국 쿠팡 경영진의 형사책임 등 중대재해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부담까지 명시했다. 그런 김 의장은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한국 쿠팡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도 미국 국적자라서 피해나가 국내선 책임지지 않는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어서 한국 시민들이나 국회, 정부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귓등으로 흘리는 듯하다. 갖은 논란에도 회원들이 ‘쿠팡과의 이별’은 어렵다고 자신하기 때문일 게다.
폭주기관차 쿠팡에 무한동력은 바로 고객들의 충성심 내지 이기심이다. 그럼에도 소비자 개인의 ‘탈팡’ 차원을 넘어 사회적 대안들을 모색할 때다.
우선 산업재해나 정보 유출 등에 대해 매출액 기준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높이는 방안이 있다. 또한 한국서 벌어들인 실질적 수익을 해외법인으로 빼돌리지 못하게 하는 방안들도 찾아야 하겠다. 이대로 두고만 본다면, 제2, 제3의 쿠팡들이 법인 주소지를 조세피난처 등지로 옮겨 장난칠 게 뻔하다.
다시금 국내 집단소송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우리는 증권거래 등 일부에만 집단소송을 도입했지만 무늬만 그럴듯하다. 쿠팡이 미국에서 이번 같은 일로 집단소송에 패소했다면, 배상금이 최소 1조원에서 최대 수십조원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그간 국내 재벌들 반발 탓에 집단소송제의 확대 적용이 어려웠다. 이에 금전 배상은 없이 소비자 권익 침해행위의 금지·중지만 요구하는 ‘소비자단체 소송’이나, 피해자 5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원의 ‘집단분쟁조정’ 같은 어정쩡한 형태로 보완된 상태다.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정부의 숙제다.
김범석이 특별한 빌런은 아닐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언제, 어디서든 윌포드들을 만들고 숭배한다. 그게 일론 머스크일 수도, 샘 올트먼일 수도 있다. 그들을 떠받든 평범한 소비자들이 정작 ‘악인’일지도 모른다.
개인정보 유출이 드러난 지 9일 만에 쿠팡 일간 활성이용자 수(약 1592만명)가 이미 예전 규모로 돌아갔다. 오늘 새벽에도 저마다 집 앞엔 쿠팡 배달품이 몇개나 와 있었을 테다. 좀 더 싸고 빠르게 받는다는 유혹과 포모(FOMO)의 불안감을 연료로 오늘도 쿠팡열차는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다. 새벽배송, 로켓배송의 편리함에만 길들여지는 건 ‘디스토피아행 티켓’일 수도 있다.
“한 시스템, 한 체제가 종말을 고했고,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다.” 봉준호 감독은 2013년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설국열차> 결말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냈다. 옛날 ‘동네점방’ 시절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노동과 소비, 안전이 상생하는 구조를 고민해볼 차례다. 아동들이 열차 엔진의 소모품이었듯, 쿠팡 방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돌아간다.
탈팡이 어렵다면 쿠팡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 폭주열차를 세울 ‘뜨거운 눈사태’가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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