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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청년참여연대는 지난 2월 12일 방 탈출 형식의 온라인 게임 ‘보미를 도와줘’를 제작해 공개했다. ‘보미’는 게임의 주인공으로 돌봄과 돌봄 노동자를 가리킨다. 이 게임은 공공돌봄의 중요성과 공공돌봄 기관인 사회서비스원을 둘러싼 사회 현안을 상기시키고자 제작됐다. 이용자가 게임을 하면서 ‘보미’의 방 탈출을 돕기 위해서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해산,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등의 관련 현안에 대해 들여다봐야 한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청년참여연대는 청년의 목소리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취지로, 매해 1~2건의 이슈 캠페인을 진행한다. 지난해 10월 ‘공공돌봄’을 캠페인 주제로 선정, 약 4개월간 ‘보미를 도와줘’를 만들었다. 청년은 돌봄과 얼마나 가까울까. 청년들은 공공돌봄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지난 2월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청년참여연대 원정혜 사무국장(26)과 류수정 캠페이너(23)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돌봄은 우리의 문제”
지난해 10월 청년참여연대 15명의 캠페이너가 모여 머리를 맞댔다. 청년의 목소리가 필요한 사회 문제에 대해 의견을 모아보니 채택된 것이 ‘공공돌봄’이었다. 서사원 해산 문제가 두드러진 때였고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와 같은 당사자 문제를 비롯해 돌봄의 영역에는 청년들도 경험하는 젠더·노동의 문제가 얽혀 있었다. 원 사무국장은 “당시 청년 캠페이너들 사이에서 ‘누구나 돌봄을 받고 돌봄을 하면서 살아오는데, 돌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주요 돌봄 정책을 떠올려보면 육아(보육), 노인돌봄(노인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환자 간병 등의 서비스가 떠오른다. 대개의 돌봄 수행자는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이 많다. 요양보호사, 가사관리사 등 직업적으로 보면 중년 여성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연령대로 봤을 때 ‘청년과 돌봄의 거리’는 상대적으로 멀지 않을까.
원 사무국장은 “단순히 청년들이 ‘나는 돌볼 사람도 없고 돌봄 받을 세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라는 걸 확인하고, 더 많은 청년을 설득할 필요가 있겠다고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에서 돌봄과 무관한 때는 없다는 차원에서 ‘인생 돌봄 그래프’를 그려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어떤 돌봄을 받았고, 지금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어떤 돌봄을 받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떤 돌봄을 받거나 제공하게 될지 짚어보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류 캠페이너는 “저도 처음 돌봄 이슈를 두고 청년과 연관해선 영케어러 문제 정도만 떠올렸는데, 이번 캠페인을 통해서 돌봄이 매우 넓은 영역에 걸친 문제라는 걸 재인식했다”며 “청년들이 당장은 돌봄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인식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공적 돌봄보다 사적 돌봄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고 돌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일종의 ‘돌봄 공포’가 있다”며 “그런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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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이지만 말랑말랑한 콘텐츠로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젊은 층에 친숙한 방 탈출 온라인 게임을 제작했다. 청년 캠페이너 8명이 게임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 중에 프로그램 개발이나 웹 디자인 기술자는 없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메타브)을 유료로 이용했고 그 플랫폼에 들어갈 게임의 스토리, 내용물, 캐릭터 이미지 등은 캠페이너들이 만들었다. 인터뷰 당일은 게임 공개 일주일째로, 200여명이 참여했다. 게임 난도가 높지는 않지만, 제작 과정에 공력을 쏟은 것을 좋게 평가한 메타브 측에서 청년참여연대에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했다. 게임은 청년참여연대 홈페이지 게시글을 통하거나 메타브 앱에서 찾아 참여할 수 있다.
■돌봄할 권리와 공공돌봄에 대해
두 사람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돌봄할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돌봄 수행자는 대체로 며느리, 혹은 딸이죠. 돌봄 노동이 한 성별의 과업으로만 치중돼 있는 게 청년 세대한테는 편견처럼 있어서, 저만 해도 ‘그렇게 하기 싫다’는 생각에 이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돌봄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보고서를 봤는데 돌봄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많이 읽었어요. ‘돌봄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기쁜 일이구나’ 하는 인식이 새로 생겼습니다.”(류 캠페이너)
“개인적인 일이지만 더 나은 돌봄 사회를 생각하는 계기도 있었어요. 저는 할머니와 매우 가깝게 지냈어요.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 연세가 더 많이 드신 이후에 투석을 해야 하는 때가 왔어요. 가족 아무도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정말 원하지 않았지만 요양병원에 들어가셨어요. 내가 할머니를 잘 돌보고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누군가 할머니를 돌보는 방식이 가능했다면, 할머니가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속상한 마음이 크죠. 돌봄을 받고, 돌봄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권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원 사무국장)
두 사람은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공적 돌봄 체계를 수립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돌봄은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확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원 사무국장은 “돌봄 영역을 외주화·시장화하면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넘기는 식으로 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정책 기조부터 중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공공돌봄이라고 해서 마냥 정부나 지자체에 일임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의 공동체성을 생각하면서 함께 계속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류 캠페이너는 “기존 돌봄 시스템에서 양질의 돌봄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되 가족 내 돌봄 노동에 대한 보장도 필요하다. 가족이라는 사회 최소한의 공동체에서부터 돌봄 노동을 보장해나가면 돌봄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사원 해산 그 후
‘보미를 도와줘’ 게임은 서사원 해산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알린다. 게임 끝부분에는 사회서비스원법(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회 처리 촉구 서명 링크로 연결된다. 사회서비스원은 현재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15곳(서울·경북 제외)에서 운영 중이다. 서사원은 업무 비효율, 낮은 성과지표 등을 이유로 지난해 4월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주도로 폐지 조례안이 결의됐다. 이어 5월 오세훈 시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서사원은 지난해 7월 말 업무를 종료했다.
서사원 재설립과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2월 13일 서울시를 상대로 시민공청회를 청구했다. 서울시 시민참여 기본조례 제9조에 따르면 선거권이 있는 시민 5000명 이상의 서명이 있는 경우 서울시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개월 이내에 토론회 등을 실시해야 한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장은 지난 2월 17일 통화에서 “서사원 해산은 졸속으로 추진·결의됐다”며 “시장 논리에 의한 평가가 정당한지, 서사원 해산 근거가 된 민간기관 기피 돌봄 수요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가사관리뿐만 아니라 노인요양까지 이주민 노동자에게 맡기겠다는 서울시의 돌봄 정책은 괜찮은지, 토론이 필요하다”며 시민공청회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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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원 폐지 조례안은 발의부터 결의까지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도지사가 사회서비스원을 통합·해산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고 타당성 검토를 거치도록, 또 소속 시설의 이용자·종사자 권익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한 ‘사회서비스원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서사원 해산 당시 소속 시설 이용자들은 기존에 만족하던 서비스가 중단되는 데 대한 불편을 감수하고 새로운 민간기관을 찾아야 했고, 종사자 345명(계약직 74명 미포함)은 집단해고됐다. 현재 해고노동자 대부분은 재취업하지 않은 상황으로 추정된다고 오 지부장은 말했다. 그는 “서사원 노동자들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공공 돌봄기관에서 양질의 돌봄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상실감이 컸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2월 20일 통화에서 “서명 인원 5000명 자료를 확인하고 있으며 시민공청회 개최 여부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은 ‘서사원 해산 사례’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한 조치를 담았다. 개정안은 17개 시·도 사회서비스원 설립 의무화, 국가의 사회서비스 사업 위탁 시 사회서비스원 우선 위탁, 국가·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경비 출연·보조 근거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시·도에 사회서비스원 설립 근거는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 서울처럼 폐지되거나 경북처럼 설립하지 않는 사례가 있어 지역별 공공돌봄 격차가 발생한다. 지자체 예산 상황에 따라 사회서비스원 간 운영상 격차가 나타나고, 오히려 저임금 노동환경을 초래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같은 달 24일 법제사법위원회가 부처 간 이견을 이유로 계속심사를 결정했다. 복지부는 지방자치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고, 민간기관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은 지난 2월 20일 통화에서 “공공돌봄을 시행하는 이유는 민간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한 돌봄과 사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시민이 없도록 공공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은 거주지역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 안정적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