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 각국은 지금 정치·경제·안보 분야에서 다각적인 위협을 겪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 점차 빨라지는 기술 발전은 정부 운영 전반에 걸친 개혁과 전략적 대응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도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세대 및 지역 양극화 등의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국가 생존 차원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스마트 거버넌스가 요구되는 배경이다. 한국행정학회와 전자신문은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전환기 국정을 진단하고 새정부의 조직 재설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를 공동 주최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첨단산업전략위원회' 필요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자신문·한국행정학회 공동 세미나 '정부운영 패러다임 전환기에 따른 국정 진단과 정부조직 재설계 방향'에서 우리 정부의 핵심 문제로 '정책 분절화'가 지적됐다. 기존 부처 조직이 기능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융합정책 이슈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기술과 산업은 다양한 영역과 부처에 걸쳐 전개되어 있지만, 이를 관리하는 부처들은 상호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종합적인 정책도 나오지 않는다는 목소리다.
정광호 한국행정학회장(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첨단산업전략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전략산업 정책 전반을 부처 칸막이 없이 통합적인 시각에서 조정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개별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정책 기능을 하나의 전략적 틀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첨단산업 프로젝트 단위별 예산제 도입을 제안했다. 기술별, 과제별 전략적 목표에 따라 재원 배분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개선하고, 중복 투자나 사각지대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중장기 성과관리 체계를 마련도 주문했다. 산업간 선제적 우선순위 설정과 정책 효과성 평가, 첨단산업별 잠재적 경쟁력과 기술 수준을 과학적으로 진단·분석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간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전략기술에 대해서는 정부의 능동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연장선으로 '산업전략부(가칭)'의 개념과 국가 리더십 강화를 기대했다.
장 학회장은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우주산업 등 고위험·고비용 분야에서 민간 주도의 기술 혁신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라며 “전략기술 분야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첨단산업 경쟁력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산업전략부(Ministry of Industrial Strategy)'의 신설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전략부가) 미래 산업 전환의 핵심 분야에 대해 선제적·주도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 리더십의 중심축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무한경쟁과 속도전 시대, 전통적인 규제 방법론 벗어나야
첨단 기술의 변화를 좇아오지 못하는 규제 이슈에 대한 개혁 목소리도 높았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 서비스를 기존의 규제 틀로는 관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경쟁 구도가 국가를 넘나드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국내기업은 물론 해외기업도 함께 포괄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수기 한국행정학회 대회협력위원장은 “구글과 메타 등 외국계 기업들은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다수의 과징금·시정명령 불복 소송을 진행 중이다”라며 “외국계 기업들이 우리의 제도와 규제기관을 존중할지, 우리 규제기관들은 국내기업만큼 외국계 기업을 규제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반문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글로벌 빅테크 시대 지금의 규제 체제로는 글로벌 빅테크를 관리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소송은 계속 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규제기관들의 예산은 제한된 점,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3~4년의 세월 동안 해당 기업은 플랫폼 시장의 승자독식구조를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고객 잠금 효과를 구축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플랫폼 서비스는 배격하는 '국가플랫폼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미국 정부와 틱톡의 갈등처럼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규제 이슈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고 국경을 넘어서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반면 국내의 경우 '플랫폼 규제법'으로 국내 기업만 대상으로 하는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특정 국가에서만 작동하는 규제의 개념이 없어지고 있어 규제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며 “규제 글로벌 리스크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새정부의 출범이 대한민국 정부 운영체계의 방향성과 구조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기존의 개별 부처 중심 대응이나 단기적 미시 정책만으로는 정책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다.
패널 토론에서는 국가 미래 이익을 조망해 부처간 분절된 중복 기능을 연계하고 조정하는 전략형 통합리더십의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나아가 정책 책임과 성과의 소재와 귀속을 분명하게 정돈하고 성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은 6월 18일부터 사흘간 세종시에서 개최되는 하계 한국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현장의 전문가 의견과 학술적 토론을 거쳐 최종안으로 정리·발표될 예정이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