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기안84’에겐 더는 예전의 재미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방송인으로 거듭난 후 승승장구하던 기안84가 힘겨운 겨울나기 중이다.
기안84는 현재 ENA와 유플러스 모바일TV에서 동시에 공개 중인 예능 ‘기안이쎄오’에 출연 중이다.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다. 시작부터 0.7%의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유료방송 가구기준)을 기록했다.
지난 9일 방송에서 시청률은 0.3%까지 떨어졌다. 물론 신생채널인 ENA에서 1%를 넘는 일조차 쉽지 않지만, ‘백종원의 레미제라블’ 등은 이를 넘은 기록이 있다. ‘기안이쎄오’의 최근 기록은 ENA의 새 음악예능 ‘언더커버’의 11일 첫 회 시청률 0.4%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안이쎄오’는 기안84의 출세작인 MBC ‘나 혼자 산다’ 연출자 출신 황지영PD가 MBC를 나와 차린 제작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기안84가 자신이 CEO가 돼 그만의 ‘기안적사고’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 컨설팅을 한다는 내용이다.
제작진은 한혜진, 정용화, 미미 외에도 방송인 조나단, 강남 등 새 출연자들을 계속 투입하고,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사무실을 벗어나 고기잡이배도 타는 등 다른 그림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지만 백해무익이다. 이런 추세라면 결국 ‘기안이쎄오’는 방송인 기안84의 ‘흑역사’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기안이쎄오’의 부진은 결국 기안84 캐릭터의 부진과 맞닿아 있다. 그를 지금까지 있게 한 ‘날것 그대로의 매력’이 없어진 탓이다. 기안84는 지금까지 제도권이 아닌 곳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철학과 감성을 갖고 움직여 재미를 줬는데, 그를 ‘무언가를 조언하는 자리’에 놓으려니 여간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전통적 예능작법에 익숙한 멤버들과 합을 맞추는 일도 ‘조율형 MC’가 아닌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2016년부터 웹툰작가와 함께 방송을 병행하기 시작한 기안84는 2023년 ‘나 혼자 산다’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두 프로그램이 동시에 화제성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당연히 그를 찾는 프로그램은 많았고, 그 역시 서서히 MBC만이 아닌 다양한 채널로 활동을 넓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기안84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캐릭터는 소비되고 각색되기 시작했다. ‘날것의 느낌을 잃었다’는 평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유태오, 빠니보틀과 함께 떠난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는 최저 2.8%(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기준), 최고 3.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마지막회에도 4%를 못 넘은 것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세 시즌 연속으로 하면서도 없었던 기록이다. 그는 지난해 그의 가치를 더욱 올려줬던 마라톤 풀코스로 ‘뉴욕 마라톤’에도 도전했지만 예전만은 못한 화제성과 시청률을 받아들어야 했다.
‘기안이쎄오’에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던 그에게는 2025년은 방송인으로서 정말 중요한 한 해가 됐다. 물론 방송에서의 성과와는 초연하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그는 알게 모르게 방송에서의 시청률 등 성과를 면밀하게 따지는 편이다.
결국 올해 기획되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네 번째 시즌과 정효민PD와 함께 하는 넷플릭스 ‘대환장 기안장’의 성과에 따라 그의 롱런 여부가 어느 정도 결정날 전망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4’는 올해 하반기 방송이 예정돼 있고, ‘대환장 기안장’은 상반기에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통해 야생성을 회복하고, 독특한 사고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울릉도 민박집의 콘셉트인 ‘대환장 기안장’ 역시 평가를 받을 경우 기안84의 반등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 긴 겨울을 잘 나는 일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