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주목하는 한국 미술가? 아, 진짜 많은데…. 김아영이다. 기술을 활용해 이야기를 시각 언어로 완벽하게 풀어내는 재능이 대단하다. 봄에 서울서 본 개인전이 잘 알려진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와 확연히 달라 놀랐다.
새러 스즈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부관장이 지난 9월 인터뷰 중 말했다. 김아영(46)의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2022~) 연작은 시간 개념을 나르는 두 배달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미디어 아트다. 팬데믹 시기 배달부들의 모습에서 착안, 고대 신화로부터 오늘날 긱 이코노미(임시직 경제) 속 노동자의 현실까지 다층적 이야기를 AI(인공지능), 게임 엔진, 모션 캡처 기술로 실감나게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스즈키 부관장이 말한 신작은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에 내놓은 ‘알 마터 플롯 1991’, 아버지를 비롯한 1970년대 중동 파견 건설 엔지니어들이 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파트로부터 석유를 둘러싼 인류의 갈등사를 풀어나갔다.
김아영이 미 대륙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6일부터 뉴욕 퀸즈에 있는 MoMA PS1 분관에서다. 13~15일에는 퍼포마 비엔날레에서 신작 퍼포먼스 ‘N 번째 신체’를 선보인다. 퍼포마는 퍼포먼스 위주의 비엔날레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25 퍼포마는 김아영을 비롯한 8명에게 신작을 주문했다. ‘오징어 게임’ 무술팀으로 에미상을 받은 김차이 감독이 무대에 오른다. 출국을 앞둔 김아영을 지난달 24일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만났다.

미 대륙 첫 개인전을 무려 MoMA PS1에서 한다.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를 미 대륙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그래서 제목은 ‘딜리버리 댄서 코덱스’, 딜리버리 댄서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얘기다. 코덱스는 책이 나오기 이전 시기의 양피지 필사본 묶음이다. 요즘은 ‘코드의 묶음집’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해시계 모형부터 영상 설치, 월페이퍼 등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모든 게 나온다.”
퍼포마 비엔날레에서 신작 퍼포먼스도 공개한다고.
“딜리버리 댄서의 두 주인공이 모션 캡처 장비를 착용한 채 무대 위에서 45분간 여성 스턴트 액션을 선보인다. 그동안 스턴트우먼은 스턴트맨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 더해 대역배우, 모션 캡처 인프라를 전부 다 노출해 버리는 노동의 현장이다.”

3년 전 프리즈 서울에서 첫 선을 보인 ‘딜리버리 댄서’ 연작은 이듬해 프리즈 런던을 통해 테이트 모던에 소장되면서 국제적 이름을 얻었다. 절정은 지난해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연 제1회 ACC 미래상 전시. 광주비엔날레 개막과 맞물려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그중 MoMA 새러 스즈키 부관장과 PS1 수석 큐레이터 루바 카트립도 있었다. 김아영은 “전시를 보고 나오던 두 사람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얼마 후 MoMA PS1 개인전 초대를 받았다”고 돌아봤다.
‘AI 잘 쓰는 디지털 아티스트’로 알려졌지만 실은 굉장히 아날로그적이다.
“딜리버리 댄서 캐릭터 한 명을 구현하는 데는 실제로 10명 이상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들어간다. 남자 대역의 바이크 주행 장면, 주연의 뒤통수, 파크루(스트리트 스턴트), 스턴트우먼, 현대 무용가 등 여러 사람의 필살기를 조합해 창조한 인물이다. 퍼포마에서의 이번 퍼포먼스는 신체, 특히 대역 배우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알고 보니 ‘딜리버리 댄서’는 여성 액션물이자 퀴어 서사, 그리고 청춘 서사였다.
“이번 퍼포마 무대에 오르는 김차이 감독과는 2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실은 여성 액션물이 많지 않다. 남성 감독이 짠 여성 액션 안무에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더라. 손톱을 세워 할퀴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식의. 그보다는 여성만이 가진 근육을 쓸 때의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고, 혐관(혐오관계), 애증 같은 말끔하지만은 않은 정서가 다 담겼으면 했다.”
당신의 청춘은 어땠나.
“시각디자인 전공 후 모션 그래픽 일을 했다. 경력은 쌓여 일은 많은데 일할 동력을 못 찾았다. 3년을 방황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동기 부여할 일을 찾자’ 마음먹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디자인 쪽 커리어는 내려놓고 사진 전공으로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다. 30대엔 런던·파리·베를린 등지로 레지던시를 돌았다. 반년 뒤 내가 어디서 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인정투쟁이자 생존투쟁이었다.”

지금도 그는 종로 낙원상가의 작업실에 기거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스튜디오 매니저 5명이 출근해 함께 일하고, 밤에는 여기서 혼자 지낸다.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서 자료 찾고 이야기 만드는 게 일상인 내향인이다. 요즘 읽는 책은 최근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의 대안의학물 『캘커타 염색체』.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은 바이블인 양 자기 전 한 챕터씩 읽는다. 예술가라는 모호한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 “가난한데도,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죠. 이렇게 럭셔리한 직업이 또 어디 있을까요? 돈까지 많이 번다면, 너무 많은 사람이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그는 최근 서울대 경영연구소와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에서 선정한 ‘2025 한국 미술시장을 이끄는 파워 20’에 리움미술관 홍라희 명예관장, BTS(방탄소년단) RM과 이름을 올렸다. 예술가는 이배·서도호·양혜규와 함께 꼽혔는데 이 가운데 최연소다. 5월 LG 구겐하임 어워드, 양성평등문화상도 받았다. 10월 초에는 홍콩 M+ 뮤지엄 외벽에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의 신작을 공개했다. 네온사인 가득한 홍콩의 거리를 배경으로 최고의 댄서를 뽑는 경연대회를 벌이는 이야기다.
김아영은 단연 올해 가장 주목받은 예술가다. 스스로도 “내 인생에서 이런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시기가 있을까. 비현실적”이라면서도 “마흔 넘어 경험했기에 덜 흥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내년 봄에는 에릭 슈밋 구글 전 CEO가 운영하는 슈미트 해양연구소의 해양과학 탐사에 예술가로 참여한다. 중동의 건설 노동자와 생물의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현장 조사도 나간다. 국내 개인전은 후년에나 볼 수 있을 전망. 어딘가로 바삐, 중요한 무언가를 배달하는 ‘딜리버리 댄서’는 이야기 배달부인 김아영 자신인지도 모른다.
☞김아영=1979년생.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런던 커뮤니케이션 대학에서 현대사진 전공 후 첼시예술대학에서 파인 아트 석사학위 취득. 2023년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어워드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 수상. 올 초 독일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내년 시드니 파워하우스 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연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리움미술관.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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