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영화 ‘글래디에이터 II’가 개봉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으로 전편 이후 24년 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2000년에 개봉한 ‘글래디에이터’는 웅장한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검투사들의 치열한 결투와 막시무스의 전설적인 여정을 그려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연출을 맡은 리들리 스콧감독은 이번 속편에서도 고대 로마의 웅장함을 충실히 재현 했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는 물론 검투사들의 생존을 건 전투,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으로 선보였다.
막시무스 사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로마 백성들은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 분)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 분)의 폭정 아래에서 신음한다. 이런 시기에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 분)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 패한 후 모든 것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 루시우스(폴 메스칼 분)는 권력욕을 지닌 마크리누스(덴제 워싱턴)의 눈에 띄어 검투사로 발탁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운명을 지닌 검투사. 과연 루시우스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화는 신화의 원형을 따른다. 그리스의 오이디프스 신화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테베에서 버려진 왕자가 운명처럼 돌아와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돼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전편에서 암살 위협을 피해 로마에서 버려진 황제의 손자가 운명처럼 로마와 돌아와 황제가 되는 고전 신화를 따랐는데 속편에서도 나미비아에서 평화롭게 살던 로마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하노가 로마군에 의해 전쟁노예가 되고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하게 되는 인생여정을 그렸다.
화합과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전편에서 막시무스가 세상을 떠난 후 쌍둥이 황제의 폭정으로 로마엔 아무런 희망이 존재하게 않게 된다. 절망으로 가득찬 로마에서 시민들은 폭력적으로 거칠게 변해간다.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의 질서가 바뀌고 시민들의 정서도 달라진다. 자신을 버렸다는 원망과 미움으로 부모를 미워하고 로마를 증오했던 루시우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부모와 조부가 이루려 했던 평화로운 로마를 재건하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 군인들에게 정의를 외치고 화합을 독려해 로마의 미래와 가치,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화려한 볼거리로 오락영화의 재미를 선사한다. 전편 제작비가 1억300만 달러인데 비해 속편은 3배에 달하는 3억 1000만 달러가 들어갔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살라미스 해전의 모의 전투다. 콜로세움의 60% 크기로 세트를 만들고 물을 채워 실제 배울 띄웠다. 디테일한 묘사와 함께 벌어지는 전투신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나다. 덴젤 워싱턴, 폴 메스칼, 페드로 파스칼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는 시공을 초월한 권력의 속성과 통치자가 갖춰야 할 덕목 등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오락영화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재미와 볼거리에 집중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되면서 세계는 제3차 대전의 공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도 독일의 히틀러라는 독재자에 의해 발생했듯이 이번 전쟁도 러시아 국가지도자 푸틴의 결정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잘못된 욕망과 목표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잘못된 결정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불필요한 전쟁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영화 ‘글래디에이터 II’는 국가지도자 선택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재인식시켜 주는 작품이라 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