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36〉슈퍼허브 임익선 대장의 메시지: 6·25 동란 속에 빛난 스카우트

2025-06-29

지인과 대화하다 보면 의외로 같이 아는 사람이 많이 '세상 좁아. 거짓말하면서는 못 살겠네!'라고 말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스탠리 밀그램은 지정인에게 6단계를 거쳐 편지가 전달되는 것을 확인(1967)했고 페이스북·트위터의 파도타기는 한 단계 더 단축했다. 인간관계망이 듬성듬성하지만, 속은 꽉 찬 클러스터가 연결되면서 '친구의 친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팔로어가 많은 슈퍼허브도 있다. 필자는 넷 검색 중 만난, 평생을 스카우트를 위해 봉사한 슈퍼허브 임익선 대장(2018년 작고)을 통해 짧으나마 스카우트 정보·사람에 접할 수 있었다.

스카우트 창설자인 로버트 베이든 포엘 경은 19세기 말 영국 육군 장교로 해외로 참전했다. 남아공 마페킹 전투에서 수개월 간 소규모 병력으로 진지를 방어하면서 보조 역할(연락·정찰·보급)을 훌륭히 해낸 소년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이들을 위한 조직·훈련이 유용하리라고 확신한 것이 계기였다. 스카우트는 '3H' 즉, 체력 증진, 행복 추구 및 타인 도움이라는 목표 추구를 위해 놀이·노래·봉사활동과 더불어 자연에서 텐트 치고 수공 기능을 연마하는 우드크래프트(자연생활기술)를 활용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는 이불로 천막 치고 놀고 밖에서는 나무·철봉에 매달리던 인류 태초의 본능과도 맞아떨어져 즐겁고 '실행 속 배움'이 가능하다. 정식 교본 'Scouting for Boys'가 출간(1908)되기 전부터 실용적 생존술을 담은 군사 교본(1883)이 일반에 애독된 이유다.

임 대장은 6·25 때 구호 활동을 전개한 '대한소년단 중앙구호대(전시봉사대)'의 경험을 소중히 여겼다. 인천상륙작전에 뒤이어 서울이 수복되자 부모의 동의를 얻은 청소년 대원들과 지도자들은 피난 안내, 방역, 어린이 보호, 교통정리와 같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기울자 미군 수송선 빅토리아호에 올라 피난 간 부산에서도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전시 구호를 이어갔다. 경무대는 청년 교육·호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담화를 발표(1957), 학교와 군의 협조를 요청했다. 훗날 임 대장은 LA 샌 페드로 항에서 전쟁 기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빅토리아호를 찾아내 한국스카우트연맹이 무궁화 금장을 수여토록 했다. 제2차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 폴란드 스카우트는 회색 부대(Grey Ranks)로 편입되어 나이별로 통신·선전·의료·무장 저항을 통해 조국을 수호했다. 전후 폴란드 정부는 우편 전달 중 흉탄에 유명을 달리한 스카우트 우표를 발행함으로써 이들의 희생을 기렸다. 시대를 막론하고 존경받는 자들의 자서전·전기를 보면 어렵던 시절의 도움을, '그때는 그때고.'라는 망각이나 인생 치부의 은폐가 아니라 은혜를 평생 잊지 않는 공통점을 보인다. 우리가 배워야 할 바다.

최근 임 대장의 글을 다시 확인하려고 하니 블로그 서비스가 중지되어 있었다. 링크의 생성·소멸은 인터넷 형상의 역동성의 증거지만, 적어도 개인 기록물은 사적 영역을 넘어 보존되어야 할 사회 자본임을 명심하는 자세가 아쉽다. 미국의 비영리 디지털 기록 보관과 같은 서비스의 등장이라도 기대해본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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