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백 사는 건, 프랑스 역사 한 조각 사는 것…삼성도 그래야" [더 인터뷰]

2024-11-14

'명품 마케팅 귀재' 폴린 브라운 컬럼비아대 교수

명품 브랜드 지휘 ‘마케팅 귀재’가 본 K컬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북미지역 총괄 회장을 지낸 폴린 브라운(57·사진)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의 K컬처를 ‘달콤한 사탕’에 빗대며 “사탕만 먹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현재에 안주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아름다움을 감성으로 느끼는 건 쉽지만 이성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이 폴린 브라운(57)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전문 분야다. 그는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 출신으로 에스티로더에서 기업 전략 및 신사업 개발 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이어 글로벌 투자회사인 칼라일 그룹에서 일하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서 북미지역 총괄 회장으로 패션·향수·화장품·시계·와인 등 70개 브랜드를 총지휘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를 탐구하면서 어떤 문화에서 어떤 상품이 먹히는지 상관관계를 끊임없이 파헤치는 게 그의 일이다.

BTS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에 한강의 소설까지, K문화의 매력은 뭘까. 이 문화적 모멘텀을 한국 상품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행사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그와 지난 6일 만났다.

한국은 얼마 만인가.

“꼭 20년 만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문화의 꽃을 피운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20년 전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시장이었고, 중국은 최대의 잠재 시장이었다. 당시 한국은 규모는 작지만 독특했다.”

K문화가 폭발하는 배경은.

“이번에 더현대와 신세계 등을 일부러 찾아가 봤다. 시각적 자극이 굉장히 강렬했다. 색상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쓰고,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 순수하며 어떻게 보면 조금 어린아이 같은 면도 있었다. 지금 세계가 바로 원하는 것들이다. 팬데믹을 겪었고, 기후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많은 국가가 경제 침체에 빠져 있고 전쟁까지 벌어지는 괴로운 시대다. 이럴 때 사람들은 순수하고 즐거운 것을 희구하는데, 한국의 문화가 그 다리가 돼주고 있다.”

“한국, 순수함 넘어 성숙해질 때”

한결같이 아름답지만 한결같이 비슷

자연스럽고 독자적인 매력 키워야

새로운 시도 계속해야 K열풍 유지

본인도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나.

“한국 문화에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지만, 내게는 살짝 과하게 달콤하다. 괴로운 시기를 겪는 어른들이 누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즐거움이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 매력인데, 나 개인적으론 보다 성숙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사탕은 누구나 좋아하긴 하지만 사탕만 먹으면 안 되지 않나.”

부족한 점도 보였나.

“서울의 번화가 성형외과 광고에 나온 이들은 모두 아름다운데, 한결같이 똑같더라. 쇼핑하러 가면 제품의 디자인부터 진열된 방식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배열된, 세련되고 예쁘지만 기계적인 매력이 주를 이뤘다. 젊고 예쁘게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다. 성숙된 것, 자연 그대로의 것이 주는 매력은 없었다.”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오랜 기간에 걸쳐 일궈내고 시행착오를 거쳐 성취해야 한다. ‘예쁘지는 않은데 매력적(jolie laide)’이라는 프랑스의 개념을 예로 들고 싶다. 바비인형처럼 예쁘지는 않고, 심지어 추한 면까지 있는데도 묘하게 매력적인 상태다. 인물로는 노년에도 모델로 활동했던 아이리스 아펠(1921~2024)이 있겠다. 전형적 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동그란 뿔테 안경과 진한 립스틱, 화려한 본인만의 패션 스타일로 매력을 뿜어냈다.”

한국 문화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변화는 사실 이미 감지되고 있다. 한국이 잘하는 화려하고 젊고 예쁜 것을 넘어 이제는 조금 엉성해도 집에서 직접 만든 것 같은 매력, 단순하면서 깊이가 있는 것, 외양보다는 영혼에 방점을 찍는 방향으로 변화가 싹트고 있다.”

그는 ‘미적 지능(AI·aesthetic intelligence)’이란 개념을 강조한다. 아름다움이 뭔지 알아야 아름다운 제품과 문화를 생산할 수 있고,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 이를 소개한 저서는 『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하버드대에선 ‘미학적 가치가 사업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교단에 섰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미학 비즈니스’ 강의를 한다.

한국의 현재 미적 지능(AI)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인가.

“영화 등 대중문화는 90점.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한국이 현재 최고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화장품 분야 역시 90점. 패션은 급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60~70점 정도, 한식은 50점 정도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 한식을 모른다. 일본은 몰라도 스시는 아는 정도는 돼야 한식의 AI도 높아진다.”

‘미적지능’ 개념 만든 ‘미의 대사’

“아름다움 뭔지 알아야 제품 만든다”

LVMH 북미지역 총괄회장 출신

“K문화·뷰티는 90점, 한식은 50점”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일본은 정밀하고 감성적이며 절묘한 미적 지능을 갖춘 나라다. 문화에 특유의 세심함이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가려는 장인정신이 빛난다. 하지만 혁신보다 현재의 수준을 지키는 걸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음악부터 영화, 패션과 미식이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릇은 작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중국은 어떤가.

“문화적으로 고전하는 건 5000년에 달하는 자국의 역사를 (문화대혁명 등으로) 일부러 지웠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빚어나가는 연결성이 있어야 한다. 디터 람스라는 디자이너가 있었기에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이 축적돼야 문화가 꽃필 수 있다. 중국은 이 점을 놓쳤다.”

1932년생인 디터 람스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 불린다. 잡스가 “존경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했다.

한국은 좀 다른가.

“과거와 현재의 균형을 잘 잡았다. 자국의 유산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빼앗길 뻔했던 경험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생긴 반작용일 수도 있고, 강대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 수도 있다. 언어부터 의식주까지 정체성을 뚜렷이 갖고 있으면서도 밖의 트렌드에도 민감하다.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짝 비틀었다. 익숙한데 뭔가 다른 문화가 탄생했다.”

한국 문화나 상품이 피해야 할 리스크는.

“‘코끼리는 춤을 못 춘다(Elephants can’t dance)’라는 말이 있다. 너무 거대해지면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의 성공은 덫이 될 수 있다. 잘하는 것만 더 잘하고 키우려 한다면, 반복과 안주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는 것만 하다 보면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된다.”

덫을 피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내 시장에선 럭셔리 카로 분류될 테지만, 미국에선 솔직히 그렇지 않다. 미국의 고급차 고객은 제네시스를 잘 알지 못한다. 제네시스가 기술적·디자인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다. 기술은 충분한데 그 브랜드가 대표하는 상징성, 그 브랜드의 스토리가 알려져 있지 않아서다.”

삼성은 어떤가.

“삼성의 제품 디자인은 멋지다. 그런데 삼성 제품을 쓴다는 것이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는 의미는 갖지 못하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드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큰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제품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그 기능을 넘어,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하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알려주는 의미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모범 사례가 있을까.

“샤넬의 제품을 구매하는 건 곧 프랑스 역사의 한 조각을 사는 것과 같다.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인물이 일으킨 혁신, 모든 여성이 코르셋과 파스텔색 치마를 입을 때 검은 바지 정장을 디자인한 용기, 가짜와 진짜 진주를 섞어 쓰는 발상의 전환 등에 동조하는 행위가 된다.”

스토리와 함께 염두에 둬야 할 요소는.

“‘판매 의식(selling ceremony)’이란 말이 있다. 제품을 사러 가는 과정에서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의미한다. 매장에 들어설 때의 특정한 향기, 고객을 대하는 직원의 태도, 포장을 어떻게 해주느냐가 단순한 ‘구매’를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 준다. 내가 컨설팅했던 스테이크 하우스 얘기인데, 유니폼을 멋지게 제작해 새로 입혀 보라고 조언했더니 매출이 껑충 뛰었다. 고객을 대하는 웨이터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발걸음이 달라지면서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한 결과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 영화 중에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가 참 좋았다. (한국계 미국인 셀린 송) 감독 특유의 성숙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적 요소와 한국적 요소를 적절히 섞으면서 각자의 매력을 살리는 묘가 있었다. 이런 건 한국만이 할 수 있다. 한국 문화를 사탕이라고 표현한 건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이미 엄청난 모멘텀을 성취해낸 한국 문화가 새로운 아름다움의 트렌드를 계속 읽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낸다면, 그 모멘텀은 유지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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