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제노사이드’

2025-09-02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수년간 금기어로 삼았던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단어를 “더는 피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봉쇄·공격으로 기근 상태로까지 들어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황을 제노사이드로 지칭했다. 그는 “우리 역사를 생각할 때, 인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자처해온 우리 정체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며 참담해했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경험한 이스라엘인들에게 제노사이드는 ‘원혼의 기억’이 서린 아픈 말이다. 그로스만의 토로는 이스라엘의 타락을 지적한 양심의 비명이었다.

세계적 집단학살 전문 연구자들의 모임인 ‘국제집단학살자협회’(IAGS)가 1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정책과 행위가 유엔 ‘집단학살 방지·처벌에 관한 협약’의 집단학살 법적 정의에 부합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아동 5만명을 포함해 죽거나 다친 팔레스타인인이 20만명(사망 5만9000명)을 넘고, 이제 굶주려 죽어나가는 ‘지상의 지옥’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한 것이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희생자를 가해자로 비난하는 선례”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인간 동물” 취급하고, 가자를 “지옥으로 만들자”는 이스라엘을 보면 ‘종족 청소’ 의도를 부정할 수 없다. 국제사회와 이스라엘 내부에서 제노사이드 비판이 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분야 석학인 유대계 미국 역사학자 오메르 바르토프도 “이 (집단학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제노사이드 협약’ 자체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더 이상 홀로코스트 같은 참혹한 우행을 용납하지 말자는 인류 성찰의 결과물이었다. 지금의 현실은 당혹스럽다. 이스라엘의 집단적 망각을 보노라면 “역사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간은 역사에서 그 무엇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란 헤겔의 탄식이 틀리지 않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마저 든다. 가자 학살 문제는 이 시대 인류 양심의 시험대가 됐다. 2000년의 국가 상실과 멸시에도 끝내 민족 정체성을 지킨 이스라엘인들의 용기와 양심이 다시 밝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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