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주자 탐구
2025년 4월 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소통관. 운집한 기자들 앞에 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하 경칭 생략)의 표정은 밝았다. 예상보다 많은 기자의 숫자에 고무된 듯했다.
범보수권 대선 잠룡 중 지지율 1위. 그가 스포트라이트의 전면에 선 건 경기지사에서 물러난 이후 십수 년 만의 일이다. 21대 대선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김문수는 그에 합당한 규모의 관심 속에서 연단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중략) 이제는 저에게 내려진 국민의 뜻을 받들기로 했습니다. 저 김문수,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며 대한민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갈 각오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습니다.
그의 공식 대선 출마 연설은 이리 굽고 저리 흘러가더니 이윽고 과거로 이어졌다.
저 김문수는 한때 혁명을 통해 노동자와 빈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중략) 저 김문수는 일생을 통해 약자를 보살피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겁게, 일해 왔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저토록 당당하게 과거를 언급하는 걸까. 그가 연설문에 담은 혁명가이자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알아보기 위해 1회에서 잠시 언급된 ‘혁명가 김문수’의 탄생 시점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
그 서울대생, 노동자가 되다
어이 김씨, 이리 좀 와 봐.
아 예.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또또사’ 김문수에게 사장이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겉봉에는 ‘김씨’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 안에는 1만원이 동봉돼 있었다.
이게 뭡니까?
사장의 답변은 화끈했다.
첫 번째 정식 직장인 동대문시장 봉제공장에서 한 달 만에 잘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목도한 충격적 참상, ‘위장취업’을 권유하던 김근태(전 열린우리당 의장) 선배의 목소리, 위수령 발동 직후 매몰차게 내쫓긴 대학교, 강제 징집 목전까지 갔다가 뜻밖에 회생했던 그 순간, ‘빙고 호텔’과 ‘남산’에서 무차별 폭행당하던 일….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그날’이 오버랩됐다.
여러분, 대학에 출세나 하러 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