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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7일 방송된 '철혈광복단-역사를 뒤바꿀 비밀 작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추상미, 코미디언 신기루, 야구 해설위원 이택근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미지의 땅, 블라디보스토크
때는 1994년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야. 조용한 한 마을에, 작은 버스 한 대가 멈추고, 그 안에서 열댓 명 되는 사람들이 내려. 며칠 전 한국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야.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어. 누군가는 열심히 사진과 영상을 찍고, 또 누군가는 수첩과 펜을 들고 일일이 기록을 하고 있어. 당시 찍은 영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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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보고 있는 이 탑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 한국인들이 투쟁하다 죽은 걸 기념하여 세운 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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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유물들이 한국의 것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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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들어오는 일본군에 대항하여 기관총을 놓고 지켜준 장소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한 재단의 연구원들이야. 이 영상을 찍 사람은 사학자 박환 교수. 러시아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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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에 러시아 연해주에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한 팀은 아마 저희가 최초일 것입니다. 1990년에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수교했거든요.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경우는 1992년이 돼서야 비로소 민간인들한테 개방이 됐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잘 알기 위해서 답사라든가 이해가 상당히 필요했습니다."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블라디보스토크는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금단의 구역이자 베일에 싸인 장소였어. 박환 교수는, 또 언제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몰두했어. 유물과 유적 발굴은 물론이고, 독립운동가 묘소를 찾아다니며 그 모든 흔적들을 영상으로 남겼어. 그 중에서도, 특히 박환 교수가 조사하고 싶었던 한 독립운동가가 있었어. 그 흔적을 꼭 찾고 싶어. 해외에서 활동했다는 이 독립운동가는 국내엔 자료가 거의 없었대. 그래서 혹시나 러시아에는 그 흔적이 있을까, 찾아보기로 한 거야.
▲ 버스기사의 뜻밖의 정체
근데, 러시아가 좀 넓어?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제 막 개방이 된 미지의 영역이야. 조사는 한 달 가까이 이어졌어. 박환 교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캠코더로 바깥 풍경을 찍었어. 그렇게 몇 시간을 이동하는데,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져. 근데 그 순간, 대뜸 누군가 말을 걸었어. 버스기사였어. 버스기사님이 함경도 말을 쓰는 고려인이라 대화가 통했어. 버스기사가 박환 교수에게 이런 걸 물었어.
"혹시... 최계립이라고 아십네까?"
최계립. 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박환 교수는 최계립이라는 이름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 왜인지 직접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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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러시아 유적지,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하고 탐방할 때, 제가 체크한 리스트에도 들어가 있는,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흔히들 저희가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거의 그런 급이다, 라고 말씀을 드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분의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은 독립운동에 있어서 대단한 그러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계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고요."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건국 훈장, 대한민국 건국에 큰 공로를 한 사람들에게 주는 훈장이지. 최계립은 우리나라 건국 훈장 중 세 번째로 높은 독립장을 받은 인물이었어. 근데 그런 이름을, 버스기사가 갑자기 툭 꺼낸 거지.
"최계립 선생이요? 그럼요 잘 알지요, 아주 큰 일을 하신 분 아닙니까."
"아이고, 정말 그 이름을 아십네까? 그분이 우리 아바이입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이 버스기사의 아버지가, 바로 최계립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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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바이' 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우리 아버님이 최계립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바로 옆에 그분의 후손이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거죠."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한국에서부터 오랫동안 그 흔적을 쫓던 인물인데. 바로 옆에, 최계립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딱! 있었던 거야. 이 버스기사의 이름은 최다니엘이야. 우선 성은 최계립과 같아. 근데, 진짜 아들이 맞을까? 박환 교수는 확인을 위해 캠코더를 세우고, 최다니엘 씨를 인터뷰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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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다니엘 씨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외형이 어땠는지, 독립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아버지의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어. 사실 이런 건 누구나 독립군에 대해 흔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지. 그래서 박환 교수가, 그에게 물었어. 혹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아버지에 대한 자료가 있냐고.
"아, 사진은 지금 내한테 있지 아니한데, 집에 우리 아바이게 있는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최다니엘 씨가 이런 걸 가져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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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15만원 사건에 대한 40주년을 맞으면서, 최계립' 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뭉치. 이게 아버지 최계립이 직접 쓴, 41장짜리 수기래. '간도 15만원 사건' 들어봤어?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엄청난 충격을 줬던 독립군의 비밀 작전이자, 해외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사건 중에 하나야. 근데 '간도 15만원 사건'에 대해 쓴 수기가 있다? 지금껏 들은 바가 전혀 없어. 게다가 독립운동가가 직접 본인의 활동을 기록한 경우는 흔치 않아.
박환 교수는 이 수기를 차근차근 읽어봤어.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내용이 장난 아니야. 지금껏 역사에 빈칸으로 남아있던 내용들이 술술 나와. 진짜 최계립의 수기인 거야. 최다니엘 씨는 최계립의 아들이 맞았어.
"대단한 항일운동가가 직접 쓴 수기를 보기는 처음이거든요.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지 않겠습니까. 수기가 발견이 됨으로써 간도 15만 원 의거의 내면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계의 또 그 속살. 이런 것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독립운동가 중심의 어떤 간도 15만 원 의거를 부활시키고 복원할 수 있는…"
-박환, 당시 연구팀원, 한국학 박사
국내에는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아, 그동안 단편적인 내용만 알려졌었대. 그런데 이 수기가 드러나면서, 이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진 거야.
'간도 15만 원 사건'이 어떤 사건일지, 이 수기를 따라서 106년 전으로 돌아가 볼게.
▲ 독립 비밀 결사, 철혈광복단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어.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잖아. 만세운동의 열기는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전해졌어. 그중 제일 분위기가 달아오른 곳이 있었어. 간도 지역에 용정이라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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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운동이 시작되고 열흘 만인 3월 13일, 용정에선 독립을 기원하는 만세운동이 벌어졌어. 당시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뛰쳐 나왔대. 다 같이 만세를 외치며 용정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향했어. 행진의 끝이 보이던 그때, 무장을 한 군인들이 보여. 그러더니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만세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어. 바닥엔 핏자국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울부짖었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넘는 사람이 중상을 입었어.
그날 이후,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선 "총칼을 든 왜놈에, 우리도 총칼을 들고 맞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어. 이런 분위기 속 무장 투쟁을 준비하는 독립운동 단체가 하나 있어. 그 단체의 이름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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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血光復團(철혈광복단). 쇠 철, 피 혈 자를 써. 이름부터 굉장히 강렬하지? 이 철혈광복단,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게 없어. 일제에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활동하던, 비밀결사 단체니까. 그나마 알려진 건, 민족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정도야. 그리고 용정에서 있었던 만세운동도, 바로 이 철혈광복단이 주도했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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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3.1운동을 준비하거나,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그걸 이끌어 나가는 주력으로 3.1운동 이후에 어떤 모든 독립운동 과정을 철혈광복단 세력들이 주도적인 활동을 한 거죠."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 박사
근데 용정 만세운동 때, 사람들이 많이 죽고 다쳤잖아. 철혈광복단은 이제 무기를 들고, 일제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있었어. 무기를 살 돈이 없는 거야. 일제의 수탈 때문에, 나랏돈이 없었던 거야. 특히 일제의 수탈이 심했던 1919년 한 해에만, 약 1억 2천 만원이 넘는 돈을 빼앗아 갔대. 지금으로 치면 12조원에 달하는 돈이야.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1원이었어. 그러면 우리나라를 벗어나 간도나 러시아에서 지내는 한인들 사정은 어땠을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농사를 짓는 게 전부였어.
"독립군을 위한 무장에는 엄청난 군자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만주나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대부분 다 빈농들이에요. 한반도에서 살기가 어려워서 그냥 할 수 없이 떠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내지만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사학 박사
▲ 일제에 빼앗긴 돈을 되찾자
이렇게 군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사이, 6개월이 지났어. 1919년 9월, 북간도에 있는 한 마을이야. 철혈광복단원 최봉설의 집에 누군가 찾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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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시오?"
"우죽 선생, 나요"
우죽 선생은, 철혈광복단원들끼리 부르던 암호야. 최봉설을 찾아온 건, 같은 단원인 윤준희라는 남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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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 집에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눴어.
"그나저나 걱정이오. 빨리 무기를 사야 왜놈과 싸울텐데, 그 금전을 어찌하면 좋겠소?"
"안 그래도 얼마 전 그 문제에 대해 우죽 선생들과 얘길 나눴소. 그때 나온 방편이 하나 있긴 한데..."
그가 말하는 방편, 일제가 빼앗은 우리 돈을 다시 찾아오자는 거였어. 수탈당한 돈을 되찾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사자는 거야. 일제로부터 돈을 되찾을 방법,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들이 떠올린 한 사람이 있었어. 전홍섭이라고, 바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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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에 있는 조선은행. 조선은행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은행이야. 전홍섭은 일본은행에서 일하는 조선인이었던 거야. 전홍섭에게 원하는 건 은행 내부 정보. 근데 아무리 조선인이라지만 일제 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이런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단원들이 전홍섭을 떠올린 이유가 있었어. 용정 만세운동 때,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때 그 일을 도와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전홍섭이었어. 일본 은행에서 일하지만, 분명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지.
며칠 뒤, 용정에 있는 조선은행이야. 전홍섭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어. 그런데 돈 사이에서 '전홍섭 동지, 긴히 요담할 일이 있으니, 해가 지면 병원 뒤쪽 공동묘지로 나오시오'라는 서신을 발견했어. 이걸 받은 전홍섭은 고민 끝에 약속 장소로 갔어.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비췄어. 윤준희였어.
"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소. 만세 시위 때부터 자네를 지켜보았소. 우리를 도와주시오."
이 말을 들은 전홍섭, 말이 없어.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어.
"우린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려는 것이오. 왜놈들로부터 돈을 되찾으려면, 우린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하오."
한참을 망설이던 전홍섭이, 입을 열었어.
"곧 우리 쪽으로 큰돈이 들어올 일이 있을 것이오"
전홍섭의 말은 이랬어. 일제가 대륙 침탈에 필요한 철도 부설금을 용정 조선은행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거야. 바로, 그 돈을 확보하면 되는 거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과의 전쟁 또는 러시아와 전쟁할 때에 일본군의 수송, 그걸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부설하는 게 제일 우선이고, 철도를 일본이 관리하는 자금의 일환이었다고 그러죠. 근데 그거를 확보를 한다는 거니 기막힌 아이디어죠."
-반병률,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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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부설금은,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조선은행에서, 간도에 있는 용정 조선은행으로 이동한대. 회령에서 용정까지는 약 120리, 지금으로 치면 50km가 거리야. 근데 차도나 철도가 없는 지역이야. 그래서 말에 실어서 이동해야 해. 호송대가 돈을 가지고 말로 이동하는 그때! 습격을 하는 거야.
▲ 목숨을 건 작전
현금 소송은, 삼엄한 경비가 필요하지. 호송대는 중무장을 할거야. 이에 맞설 철혈광복단도 최정예 멤버를 모집해야 해. 어떤 사람이 적합할까? 현장 지리도 잘 알아야 하고, 무기를 다루는 능력, 말 타는 실력, 격투 기술까지 있어야 해. 그렇게 선발된 인원이야.
전홍섭과 접촉했던 윤준희, 최봉설을 비롯해, 임국정, 한상호, 박웅세, 김준 까지. 20대 초반의 청년 6명이 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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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해. 우선 단원 몇 명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어. 작전에 쓸 총을 사러 간 거였어. 당시 러시아에선 독립군들도 무기 구매가 가능했대. 자기가 키우던 송아지를 팔고, 그 돈으로 총을 샀다고 해. 바로 이 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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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브라우닝 권총.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을 때 쓴 총과 같은 거래. 이 총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사거리가 짧고 명중률이 낮아. 심지어 불발하는 경우도 있어. 그야말로 목숨을 건 계획이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해.
호송대가 밤에는 대응하기 힘들 것이니 해가 떨어진 후 습격하기로 했어. 그럼 아침에 출발한 호송대가 동량어구 쯤을 지날 거야. 그렇게 매복 장소는, 동량어구로 정해졌어. 매복 해서 급습하려면 호송대와 가까워야해. 용정으로 진입하는 좁은 길이자 유일한 길목이야. 그리고 인원 배치는 세 명씩 두 조로 나눴어. 윤준희, 박웅세, 김준이 한 조가 되고, 최봉설, 임국정, 한상호가 한 조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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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희 조가 앞쪽에 있다가, 호송대가 오는 걸 확인하면 최봉설 조에게 신호를 보내. 그리고 호송대가 그곳을 지나갈 때, 6명이 앞뒤에서 동시에 습격하기로 했어. 탈취에 성공하면 박웅세와 김준은 마을로 도주해 숨고, 최소 인원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목적지는, 일제에 대항할 무기를 살 수 있는 곳.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야.
근데 아직 파악을 하지 못한 정보가 있어. 바로 현금 호송 날짜. 철혈광복단원들은 애타게 전홍섭의 연락을 기다렸어. 단원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때, 은밀하게 서신이 하나 전달됐어. 붓에 먹물을 묻혀 문지르니, 비밀서신에서 글씨가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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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月 四日."
거사 날은 1월 4일이야.
▲ 운명의 그날
드디어 1920년 1월 4일.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조선은행이야. 아침 이른 시간부터, 호송대가 돈이 든 궤짝을 말에 실었어. 호송대는 일본 순사와 은행원, 우편물 호송인 등 총 6명. 호송대는 허리에 도검을 차고, 장총에 권총까지 장착했어. 완전 철통 보안인 거지.
그날 오후, 동량어구야. 길목 아래 언덕에는, 철혈광복단원들이 매복했어. 손에는 총을 들고, 호송대가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죽여 있다가, 호송대가 이 길을 지나갈 때, 정확히 덮쳐야 해. 기회는 단 한 번이야.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호송대는 오질 않았어. 해는 졌고 날은 추워. 단원들은 하나 둘 지쳐가기 시작했어. 다들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던 그때,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와. 잠시 후, 말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어렴풋이 일본어가 들려. 호송대가 드디어 동량어구에 온 거야. 호송대원들은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 안심한 듯 했어. 그 순간! "사격!!" 신호와 함께, 철혈광복단 여섯명이 동시에 뛰어올랐어.
탕! 탕! 총소리와 함께, 말에 탄 순사와 호송 대원이 굴러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혼비백산이 돼서 여기저기 도망가기 바빴어. 예상치 못한 습격에, 호송대가 손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한 거야.
윤준희와 최봉설은 궤짝이 실린 말에 올라탔어. 단원들은 약속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박웅세, 김준은 재빠르게 마을로 숨고, 나머지 넷은 산 깊은 곳으로 향했어. 한 10리쯤 달려왔을까? 산 중턱이야. 주변을 확인하고 궤짝을 내렸어. 어두운 산속, 유일한 빛인 달빛에 비춰 둘은 짐을 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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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권 100장씩 묶여서 50개, 5만 원 이야. 5원권 200장씩 묶여서 100개, 10만 원이야. 총 15만 원이야. 1920년에 15만 원, 지금으로 치면 얼마나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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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원은 학자들마다 여러 견해가 있는데 현재 금액으로는 학자들에 따라서는 한 150억 정도 된다, 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돈이었어요. 1919년에 4인 가족 기준으로 해서 한 25원 정도면 됐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게 15만 원이니까요. 어마어마한 어떤 무장을 할 수 있는. 그 당시에 북로군정서가 이제 대원이 한 500명 정도 됐는데 그런 게 한 9개 부대 정도가 편성될 수 있는, 그러한 정도의 화력 무장력을 갖추는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돈이 그 당시에 의거로 갖고 온 것이죠."
-박환, 사학자
지금으로 치면 150억, 엄청난 금액이었던 거야. 그때 러시아에서 총과 탄환 세트가 35원에 거래됐어. 그럼 이거 4천 개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야. 이제 서둘러 이 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야 해.
그런데 임국정이 말에 올라타더니, 정반대 방향인 백두산 쪽으로 향했어. 이것도 작전이었어. 겨울이라 발자국이 남으니, 추적에 혼선을 주려 한 거야.
▲ 최종 목적지, 블라디보스토크
그 무렵, 일제 측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호송대가 습격당했다는 걸 알게 됐어. 현장에서 두 명이 사망했고, 돈 15만 원까지 빼앗긴 상황이야. 일제는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본 경찰 11명을 현장에 급파시켰어. 이건 분명 현금 수송 일을 아는 자의 짓이라고, 은행 안에 범인과 내통한 자가 있을 거라 여겼어. 내부자 색출에 나선 일본 경찰은, 평소 한인과 교류가 잦다는 전홍섭을 의심하기 시작해. 사건 당일 밤, 전홍섭은 체포되고 말아. 그리고 강도 높은 고문을 받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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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지점으로 15만원의 현금을 운송하던 도중 십여 명의 무기를 가진 자들이 달려들어 두명을 살해하고 현금 15만원 전부를 빼앗아 가지고 달아났다는 데 범인은 아직 잡지 못한다더라."
-매일신보, 1920년 1월 8일 기사 中
사건 나흘 후의 기사야.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내용이야. 그리고 범인을 10여 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지? 범인의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거지. 왜였겠어? 이때까지, 전홍섭이 입을 열지 않았다는 얘기야.
같은 시각, 철혈광복단원들 역시 한시가 급해. 체포된 전홍섭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빨리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에 올라타야 하거든. 견대에 싼 돈을 몸에 묶고, 두루마기를 겉에 두른 채, 일제의 눈을 피해 3일을 쉬지 않고 걸었어. 그렇게 항구에 도착한 네 사람은, 무사히 블라디보스토크행 배에 탔어. 캄캄한 망망대해를 지나 다음날 이른 새벽. 저 멀리 어두운 항구에 번쩍번쩍 불빛이 가득해. 드디어 러시아에 도착한 거야. 배에서 내려 러시아 땅을 밟는 순간, 단원 한 명이 말해.
"잠깐만, 아직 긴장을 풀지 마시오. 지금 왜놈들이 여기저기 깔려있소"
보니까, 여기저기 일본군들이 깔려있어. 당시 일본은 러시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 근데 러시아 내에서 정부군과 혁명군이 내전을 벌인 거야. 그동안 러시아 정부군과 협력했던 일본은, 러시아 정권이 바뀌면 손해야. 그래서 러시아 정부군을 도우려고, 일본군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었던 거지.
다행히 단원들은, 일본군들의 눈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갔어. 한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자,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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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신한촌 한인들은 이들을 반겼어. 그중 한 한인이, 이들에게 도움을 줬어. 그의 도움으로 은신처에 몸을 숨길 수 있었어. 몸을 녹인 이들은 곧 비밀회의를 열었어.
"돈은 윤준희 동지가 관리하고, 무기는 임국정 동지가 사는 걸로 하지요."
그 사이, 사건이 일어난 용정에서 일본 경찰은 아직도 헤매고 있어. 게다가 러시아 내전에서 혁명군이 승기를 잡았어. 그리고 점점 동진해 오고 있어. 일본 입장에선 발 등에 불이 붙었어. 상황에 따라, 되려 일본군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일본 경찰은 4-50명씩 나서서 간도 전역을 수색했어.
"조선은행 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체포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입을 열게 하라!"
조선은행권을 쓰는 모든 사람을 다 잡아들이기로 한 거야. 죄 없는 조선인 농민들을 무작정 체포해서 악행을 가한 거야. 그리고 이런 걸 배포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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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 제2호.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5원권과 10원 권을 사용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보고할 것. 신고자에겐 대가를 지불하겠음."
이들을 잡으려고, 현상금까지 걸은 거야. 무기를 살 때 조선은행권을 쓰면, 일제의 레이더에 걸릴 거야. 그러니 환전을 해야 해. 이 환전도 암암리에 해야 해. 그리고 은밀하게 무기를 구매해야 하는 거지. 이걸 안 들키고 하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마침 무기 구매를 맡은 임국정이 이렇게 말했어.
"내가 우리 일을 도와줄 적합한 자를 알고 있소. 아마 그 자라면 가능할 거요."
그가 말한 자의 이름은, 엄인섭이었어.
▲ 마지막 임무의 적임자, 엄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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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인섭, 바로 이 사람이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홍범도 장군이야. 그 옆에 있는 자가, 바로 엄인섭. 어떤 인물일 것 같아?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안중근의 의형제였다는 거죠. 안중근 의사가 1907년에 가거든요. 러시아 연해주로. 그래서 연해주로 갔을 때, 자기가 만난 의기투합 된 두 사람을 딱 뽑는데 한 사람이 엄인섭이고요. 안중근 의사와 같이 동의회 의병의 국내진공작전 때 같이 들어왔던 사람, 러시아 지역의 3.1운동을 이끌고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로까지 지명될 정도로, 애국자로서 알려진 사람이에요."
-반병률,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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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인섭은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었어.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 동맹을 맺고 의형제처럼 지냈다고 알려졌어. 1908년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의병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기도 한 자야. 게다가 러시아어도 잘했어.
임국정은 무기를 살 돈을 들고 엄인섭을 만나러 떠났어.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며칠이 걸릴 거야. 1분 1초가 급하지만, 이 거래만 잘 끝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거야.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설 연휴야. 집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남은 세 청년만 초초한 마음이었어. 무기를 사러 떠난 임국정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당최 올 때가 됐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고 있어. 며칠이 더 지나, 1월 30일이야.
기다리던 임국정이 돌아왔어. 근데 한 명이 아니야. 임국정 옆에, 처음 보는 얼굴이 있어. 바로 무기 구매를 도와준, 엄인섭이었어. 둘의 표정이, 아주 좋아.
"일은 잘 치렀소. 내일 저녁 총과 탄환, 기관총을 거래하기로 했소. 이게 다 엄인섭 동지 덕분이오."
이제 가서 돈을 주고 무기만 받아오면 된다는 거야. 날만 밝으면, 무기를 받고 그렇게 염원하던 독립투쟁을 할 수 있는 거야. 단원들은 간만에 소박하게나마 국수에 술 한잔을 먹고 잠을 청했어. 다음 날인 1월 31일,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이 기사를 한 번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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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3시쯤 되어 잠복하고 있는 신한촌을 격한 결과 범인을 체포…도적질 한 돈과 혈포 탄약 가방 등을 발견하여 압수하였다."
-매일신보, 1920.02.06 기사
단원들은 체포되고 탈취한 돈도 다시 빼앗겼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날 새벽, 3시로 돌아가볼게.
▲ 수포로 돌아간 계획
철혈광복단원은 은신처에 모여서, 다 같이 잠을 자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이들의 은신처를 찾아와 문을 두드렸어. 그리고 문을 박차고선, 단원들이 자고있는 방으로 들이닥쳤어. 일본 헌병대였어. 잠에서 깬 이들은, 손 쓸 새도 없이 헌병대에게 제압당했어. 헌병대는 포승줄로 이들을 결박하기 시작했어.
그 순간, 최봉설이 주먹으로 헌병대의 얼굴을 가격했어. 그리곤 밖으로 재빠르게 도망쳤어. 그때 헌병대가 쏜 총에, 최봉설이 오른쪽 어깨를 맞았어. 최봉설은 총에 맞은 어깨를 부여잡은 채 무작정 뛰어갔어. 하지만 최봉설을 제외한 나머지 단원들은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체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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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이들의 체포 과정에서, 아주 큰 공을 세운 일본 경찰이 있었어. 이름은 기토 가쓰미.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했는데, 사실은 비밀리에 경찰로 일하고 있었어. 주로 비밀결사, 독립운동가를 사찰하고, 체포하는 일을 했대. 기토 가쓰미는,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능력이 뛰어났대. 그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었거든.
"일본 영사관 직원들이 자기가 관리하는 밀정들이 몇 명씩 있었던 모양이에요. '기토'라는 사람이 제일 유명한 한인 밀정을 관리했던 한국어 통역이었죠.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소속됐던 사람인데요. 첩보 보고서나 일본 외무성 기록을 보면 기토 이름이 많이 나와요."
-반병률, 사학자
바로, 밀정을 이용하는 거였어. 그럼 이 사건, 어떻게 된 거겠어? 내부에, 기토에게 보고한 밀정이 있었다는 얘기지. 누가 밀정이었을까?
이 밀정, 아주 오래전부터, 밀정으로 활약한 걸로 보여. 한국어 신문의 간행을 막으려 활자 15000개를 훔치기도 했고, 을사늑약을 체결시킨 일본 외교관을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도 일제에 일러바쳤대. 고급 정보를 전부 넘겨주던, 어마어마한 밀정이었던 거야. 그게 누구냐, 일제가 쓴 명단에, 그 이름이 나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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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의 정체는 엄인섭. 철혈광복단 무기 구매를 도운 자, 안중근과 단지 동맹을 맺고, 의형제처럼 지냈던 자. 독립군이 그토록 신뢰했던 엄인섭이, 바로 밀정이었던 거야.
▲ 변절자 엄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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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애국심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1910년대 내내. 러시아 지역의 3.1운동을 이끌어갈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로까지 지명될 정도로 1919년까지는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1920년 이 15만 원 사건 주역들이 갔을 때, 엄인섭이라는 사람을 누가 의심을 했겠어요?"
-반병률,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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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 운동에 있어서는 거물 중에 이제 거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엄인섭을 믿었던 거죠. 그렇게 대단한 항일운동가가 밀정이었을까? 라는 데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 있는 정보 보고에 엄인섭이 밀정이고,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의암 유인석 체포에 있어서도 기여를 했고. 그런 기록들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럼으로써 그게 이제 알려진 것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박환, 사학자
게다가 그는, 일본 경찰 중에서도 한 사람과 아주 긴밀한 사이였던 걸로 보여. 바로 기토 가쓰미였어.
1911년 6월 1일.
홍범도가 흑룡강 철도 공사에 인부를 보낼 계획인데, 노동의 대가로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기토 가쓰미가 엄인섭으로부터 얻은 정보-
홍범도 장군이 무기를 사려 한다는 걸 엄인섭이 보고했단 내용이야. 아까 홍범도 장군이랑 같이 찍은 사진, 기억나? 뒤에선 홍범도 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고 있었던 거야. 근데 엄인섭은 처음부터 밀정이었던 건 아니야. 그가 변절한 이유가 뭘까? 그가 밀정 행각을 한 기록은, 근 10년 전인 1911년부터 등장해. 1년 전인 1910년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해야. 그게 영향을 미친 걸까.
결국 밀정의 보고로, 철혈광복단원들은 체포됐어. 체포된 세 사람은, 경찰에 끌려가던 그제야, 엄인섭이 밀정이었다는 걸 눈치챘대. 다른 이유도 아닌, 믿었던 사람의 배신 때문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거사가 물거품이 된 거야. 기분이 어땠을까?
더 안타까운 일이 있어. 이들이 체포되고 몇 시간 뒤, 러시아 정부군과 싸우던 혁명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입했어. 이게 무슨 얘기야? 만약 몇 시간만 늦어졌더라면, 일제가 힘을 못 쓰고, 체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야.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혁명 세력에 의해서 다 완전히 보호받고, 또 자금도 있는 데다가 충분히 그 후 지원을 받아서 군수품들을 다 마련을 해가지고, 북간도로 가서. 이미 청년들은 엄청나게 몰려 있는 상태고 독립군이 되려고 하는 그런 인적 자원이 있는 상태에서 독립전쟁을 제대로 멋있게 크게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된 거잖아요. 그것이 남긴 후유증이라는 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반병률, 사학자
체포 당한 단원들은 끔찍한 고문을 당했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경북도 청진, 서울을 다니며 재판은 3심까지 이어졌어. 1년 넘게 이어진 최종 재판 결과는 이렇게 나왔어.
<주문>
피고 준희, 국정, 상호를 각각 사형에 처한다. 피고 홍섭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1921년 8월, 이들의 사형이 집행되고, 이렇게 간도 15만 원 사건은 끝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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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정, 윤준희, 한상호 세 동무가 사형장에 나가면서 '일본강도놈들이 자그마한 우리 육체는 죽이지만 조선 독립할 정신과 강경심은 점점 살아있다. 조선은 해방될 것이다, 일본은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하였다."
-최계립 수기 中
만약 밀정이 고발하지 않아, 예정대로 무기를 샀다면, 그래서 계획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무래도 북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국내 진공 작전이 활발히 벌어졌을 것이고요."
-박환, 사학자
"독립전쟁 독립 무장투쟁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겠죠. 군사력이 크게 훨씬 더 강화됐을 거고, 우리 독립군들의 군사력 수준이 엄청 달라졌겠죠."
-반병률, 사학자
▲ 유일한 생존자, 최봉설
그럼 체포되지 않았던, 최봉설은 어떻게 됐을까? 재판 결과를 보면, 최봉설은 궐석 재판으로 사형을 받았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단 뜻이야. 이게 무슨 뜻이야? 끝까지 그를 잡지 못했던 거야. 철혈광복단원들이 체포되던 날, 총상을 입고 달아난 최봉설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 그 뒤로도, 항일무장투장 단체에 들어가 독립을 위해 싸웠어.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갔어. 그곳에서, 남은 여생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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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겪은 일, 독립을 위해 모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후손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줬대. 그리고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쳤던 시절, 함께 싸웠던 동료들을 기억하며, 눈을 감았대.
최봉설의 후손들은, 그의 독립을 위한 마음, 희생정신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 그중 한 명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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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증손이고요. 독립운동가 최봉설의 후손입니다. 최계립 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진짜 이름은 최봉설입니다. 이모할머니가 저한테 최봉설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싸우셨는지 얘기해주셨습니다. 첫 느낌.. 처음에는 정말 영웅 같았고, 한국의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죠. 말로는 감정을 설명을 못할 정도네요."
-최 알렉산드르, 최봉설의 증손자
최봉설의 다른 이름, 뭐라고? 최계립. 사형당한 최봉설은 죽었고, 새로 태어나 다시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의미로 이름을 최계립이라고 바꾼 거야. 자필로 쓴 수기를 통해, 간도 15만 원 사건의 전말을 우리에게 전해준, 바로 그 사람이야. 그가 쓴 수기, 다시 한번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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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정이는 순사놈들이 언덕 위에 나란히 하고 오는 것을 보고 사격 소리를 쳤다. 사격 소리와 같이 여섯 청년은 언덕 위에 뛰어오르며 순사놈들을 사격하여 말 위에서 뒹글뒹굴 굴러 떨어진다."
"오백리 길을 삼일동안 왔다. 음력 동짓달 19일 저녁 아홉시에 해상 위로 떠나가는 륜선(배)은 고동소리를 크게 친다. 륜선에 앉은 네 청년은 세상만사를 성공한 줄로 생각했다."
"십오만원 사건이 일시적으로 실패한 듯 하나 조선 해방 투쟁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경해지고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이 판결과 같이 최봉설이 이름을 고쳐 계립이라고 하였다."
-최계립 수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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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15만 원 의거 같은 경우는 단순하게 보면 러시아에 가서 무기를 구입해서 무장투쟁한다, 라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민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의 건설을 앞당기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한 점이었다, 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환,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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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 민족에 대해서 아주 강렬한 책임의식, 내가 그거를 해야 된다고 하는 그 희생 정신. 이런 것들이 아주 체질화된 사람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던 그런 분들이었죠. 별 볼 일 없는 미미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엄청난 그런 대사건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고.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그런 활동, 사건이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반병률,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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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당한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선생은 서울 형무소 수인 묘지에 암장됐다가, 1966년이 되어서야 현충원에 안치됐어. 최봉설의 묘는, 마지막으로 생활한 카자흐스탄에 모시고 있대. 지금도 후손들은 독립을 위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
곧 있으면, 3.1절이야. 단순히 우리가 독립을 위해 싸운 날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목숨 바쳐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걸. 한번쯤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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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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