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의 안전보장에 발을 뺄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 목표를 국내총생산(GDP) 5% 수준으로 높였다. 정상회의 개막을 이틀 앞두고 사실상 미국을 달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로이터, AFP, DPA 통신 등은 22일(현지 시간) 나토 32개 회원국이 2035년까지 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하는 목표 지침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GDP 대비 직접 군사비 3.5%, 간접적 안보 관련 비용 1.5%를 합해 5%의 국방비를 회원국에 제안한 바 있다.
다만 나토에서 국방비 지출 수준이 지난해 GDP의 1.24%로 가장 낮은 스페인은 이번 합의에서 빠졌다고 주장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TV 연설에서 “다른 나라들이 방위 투자를 늘리려는 정당한 바람을 완전히 존중하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상회의 공동성명 초안에 국방비 지출에 관한 표현이 “우리는 약속한다”에서 “동맹국들은 약속한다”로 다소 완화된 점을 들어 스페인은 여기에서 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 셈이다.
산체스 총리는 지난 19일에도 뤼터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5% 목표는 불합리하다며 자국을 제외해달라고 촉구했다. 산체스 총리는 극좌 성향의 연정 파트너 수마르 정당 등으로부터 국방비를 증액해선 안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에 적정한 국방비 지출 규모를 GDP의 2.1%로 제시하고 있다. 뤼터 총장은 스페인의 반대 등을 감안해 방위비 목표 달성 기한을 당초 제안한 2032년에서 2035년으로 늦췄다.
나토가 방위비 부담 수준을 크게 늘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구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돈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국은 방어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 종전을 계기로 사실상 나토 탈퇴 카드까지 고려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취임 초 백악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회원국이 GDP의 4~5%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러시아의 무력 위협이 당면한 상태에서 유럽은 자체 방위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