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황제도 즐겨먹던 장미월병…한중일 각양각색 꽃 먹는 풍속

2024-07-03

꽃보다 떡(花より團子)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정확하게는 떡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떡인 경단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花より男子)도 이 속담을 패러디해 지은 제목이다. 일본어로 경단인 당고(だんご)와 남자는 같은 발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꽃보다 떡이라는 속담은 꽃구경도 좋지만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말과 비교하자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에 해당된다.

꽃도 좋지만 먹는 게 먼저라는 일본과 달리 중국에서는 꽃구경과 배고픔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 어느 것 하나에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동시에 해결했으니 꽃과 떡(빵)을 하나로 만들어 동시에 먹어치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는 모두 봄부터 여름까지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나며 자태를 뽐내니 너도나도 꽃구경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요즘이야 벚꽃 구경이 중심이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봄이 오면 온 산천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진달래꽃 감상에 나섰는데 꽃 나들이에 먹을 것이 빠질 수 없었다. 해서 찹쌀가루에 진달래 꽃잎 붙여지지는 진달래꽃 화전(花煎)놀이로 봄의 정취와 함께 솟아오르는 식욕을 동시에 해결했다.

일본도 꽃구경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벚꽃 피는 계절이면 벚나무 꽃그늘 아래 돗자리 깔아놓고 도시락 까먹으며 꽃구경, 하나미(花見)을 즐긴다. 다만 우리처럼 그 자리에서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지는 않는다. 대신 겹벚꽃이 필 무렵이면 그 꽃잎을 따서 소금에 절여 벚꽃 절임, 사쿠라즈케(櫻漬)를 만든다. 이 벚꽃 절임은 축하행사가 있을 때 녹차 대신 차로 마시기도 하고 혹은 떡으로 빚거나 주먹밥에 고명으로 올리기도 한다.

중국도 꽃 피는 계절을 맞아 꽃을 즐기는 것은 다름이 없었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특별히 따로 꽃구경을 나서지는 않지만, 예전에도 꽃 나들이를 떠나 눈으로 꽃을 감상하지는 않았고 대신 입으로 꽃을 먹으며 계절을 감상했다. 그리고 한국의 진달래나 일본의 벚꽃 같은 봄꽃과 달리 초여름에 만발하는 장미 감상에 방점을 찍었다.

청나라 말 북경 지역의 세시풍속을 적은 『연경세시기』에는 초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4월이면 장미꽃을 따다가 그 꽃잎으로 장미 떡 혹은 장미빵(玫瑰饼)을 만드는 것이 북경 지방의 풍속이라고 나온다.

장미떡이니 장미빵이니 헷갈리게 표현했지만 실은 겉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월병(月餠)이다. 이른바 장미 월병인 셈인데 다른 월병과 달리 그 소를 장미잎으로 만들어 가득 채운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흔히 우리는 월병을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에만 먹는 명절 음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월병도 우리나라 송편처럼 명절에 관계없이 특별한 날 혹은 별식으로 먹는다.

장미꽃으로 어떻게 월병의 소를 만들까 궁금한데 『청패류초(淸稗類钞)』라는 문헌에 만드는 법이 자세히 나온다. 밀가루를 참기름으로 반죽한 후 그 소로 따온 장미꽃을 깨끗이 씻어 빻고 설탕 등으로 버무려 넣고 굽는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장미 월병은 장미 향이 짙게 배어 그 맛이 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맑게 씻어 준다(洗心)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청나라 궁중에서도 많이 먹었던 모양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청나라 초의 건륭황제가 특히 장미 월병을 좋아했다고 한다.

황제가 좋아했다면 민중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인데 연경세시기에는 단오절이 지날 때까지 북경에서는 집집마다 장미 월병을 만들어 먹고 또 길가 상점에서도 이 장미 월병을 팔았다고 나온다. 그러고 보면 청나라 말에는 꽤나 유행했던 간식(小吃)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북경 시내 등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온라인상에서는 꽤나 팔리는 추억의 먹거리가 아닌가 싶다.

사실 예전 중국인들이 즐겨 먹었던 꽃은 장미뿐만이 아니었다. 연경세시기에는 봄이 오면 갖가지 꽃으로 만든 월병을 먹는데 음력 3월이면 느릅나무 꽃과 열매로 만든 유전고(榆錢糕)를 만들어 먹는데 꽃 모양이 마치 돈(錢)과 같아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음력 4월에는 또 장미 월병과 함께 등몽병(藤夢餠)이라고 하는 등꽃 월병을 만드는데 보라색 등꽃으로 만든 이 월병은 맛이 달콤하고 색감이 우아하며 한입 먹을 때마다 우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등꽃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어딘지 낯선 느낌이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꽃 피는 계절이 되면 다양한 꽃으로 월병을 만들었는데 굳이 북경만이 풍속이 아니라 산시성의 서안과 쓰촨성의 성도 윈난성 등지에도 신선한 꽃으로 만든 월병(鮮花餠)을 먹는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역시 진달래 화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봄에는 배꽃인 이화전(梨花煎), 여름에는 장미전(薔薇煎)과 연꽃인 연화전(蓮花煎), 가을에는 국화떡(菊花餠)을 먹었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 꽃이 활짝 핀 이때 재미 삼아 알아본 중국과 한국, 일본의 꽃 먹는 풍속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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