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몸값 모델 광고…뭔가 특별한 신호가 있다

2024-09-20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커피 브랜드 광고의 비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커피잔을 들고 있는 광고를 보게 된다. 드롱기가 몇 년 전 내놓은 커피머신 ‘퍼페토’의 광고판인데 그것을 보면 조지 클루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What else?(왓엘스·다른 게 뭐 있어, 최고란 의미)’. 네스프레소가 인격화한 얼굴. 워낙 많이 봐서 광고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돌아갈 지경이다. 한국에서 커피 광고라고 하면 맥심의 안성기, 카누의 공유를 떠올리게 된다.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나 전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러면서도 가장 잘 생겼다고 인정받는 중년 남성 배우들이다. 몸값이 천문학적일 것이라 짐작된다. 한국의 공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정도로 비싼 값을 주고 가장 유명한 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사실 잘 따져보면 공유가 커피 자체의 품질에 대해 전달하는 정보는 거의 없다. 이 커피가 정말 맛있다, 정말 훌륭하다, 이런 정보를 전달하려면 유명 배우보다는 오히려 전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라든가 유명한 맛칼럼니스트를 모델로 내세우는 광고가 더 그럴듯할 것이다. 물론, 이런 ‘전문가’들이 유명 배우만큼 눈길을 확 끌거나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할 것이 자명하고, 또 광고를 할 때 반드시 소비자들에게 전문적이고 관련성 높은 정보들만 전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행동경제학 분야에서는 소비자들이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든가, 의외로 첫인상에 끌려서 충동적인 소비를 많이 한다든가 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충동적 소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조지 클루니나 공유를 데려다가 눈길을 한번 끄는 것이 과연 그 엄청난 광고비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 이런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약간의 품질·가격 차이에도 고객 대이동

독점적 경쟁시장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천문학적 광고비 지출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점적 경쟁시장은 과점시장과 비슷한데 조금 다르다. 시장구조를 경쟁의 강도에 따라 나눠볼 때 경쟁이 가장 약한 독점시장은 공급자나 수요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반대쪽 극단에 있는 완전경쟁시장은 무수히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장이다. 과점시장은 생산자가 둘 이상이지만 무수히 많지도 않은, 대개 두서너 개 정도의 기업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과점시장에서 동질적인 재화가 공급된다고 가정하는데 주유소와 같은 휘발유 소매 시장이 과점시장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독점적 경쟁시장에는 과점시장처럼 한 손에 꼽을 만한 수의 생산자가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동질적이지 않고 약간씩 차별화가 되어 있어서, 각 기업이 자기 제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점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앞에서 언급한 네스카페와 드롱기 외에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나이키와 아디다스, 질레트와 쉬크, 에너자이저와 듀라셀, 이런 기업들이 독점적 경쟁시장의 대표적 주인공들이다. 향수나 화장품, 한국의 소주나 맥주 시장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각자 기호에 따라 특정 브랜드 제품을 주로 소비하지만, 아주 밀접한 대체재들이 존재해서 쉽게 다른 제품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평소에 자기가 주문할 때는 클라우드나 켈리 마시던 사람이 가끔 다른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 가면 카스나 테라를 마시기도 한다는 얘기다.

‘나는 뜨내기가 아니다’ 돈으로 진심 증명

자, 이제 앞의 두 이야기를 서로 연결해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나 스포츠 스타들을 데려다가 광고를 찍는 기업들은 독점적 경쟁시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여러 브랜드들 사이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와 질레트 광고에 누가 출연했었는지, 또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어느 회사가 거액의 후원금을 내고 ‘공식 파트너’가 되곤 했는지 잠깐 떠올려 보자. 그런데, ‘경쟁이 치열하니까 그만큼 광고에도 돈을 더 쓰겠지…’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한 가지 더 고려할 것이 있다. 바로 기업의 이윤율, 소위 마진율이다. 독점적 경쟁시장에서는 제품 한 개를 팔 때 이윤을 많이 남기기가 어렵다. 매우 밀접한 대체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값을 좀 비싸게 책정해도 자기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겠지만, 나이키가 제품값을 지나치게 높이면 상당수의 소비자가 아디다스로 옮겨갈 위험이 있다. 맥주도 “골라담아 네 캔에 만원” 식으로 가격이 일단 형성되고 나면, 어느 브랜드 하나가 “우리 맥주는 한 캔에 5000원”하고 높은 값을 부르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맥주 맛을 브랜드별로 차별화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그 차별성을 가지고 정당화할 수 있는 가격의 차이 또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독점적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박’을 터뜨려 단기간에 큰 이윤을 얻기보다는 꾸준히 오래 버티면서 많이 팔아야 한다.

커피 시장에서도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의 멋진 모습에 이끌려 그 커피를 한 번 마셔보는 소비자는 꽤 많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회성 소비에서 그치면 커피 회사는 살아남기 어렵다. 처음 몇 번 먹어 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어, 이거 내 입에 잘 맞고 아주 좋은데’라고 느껴서 계속 그 제품을 꾸준히 사다 먹게 만들어야 이윤이 제대로 난다. 결국 돌고 돌아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는 얘기가 된다. 품질이 중요하지 않은 시장이 어디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독점적 경쟁시장에서는 특히 품질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리고 엄청난 광고비는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사람들을 잠깐 혹하게 만들어서 질 낮은 제품을 딱 한 번 팔아치우고 사라져버릴 기업이라면 독점적 경쟁시장에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없으면 막대한 광고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광고비를 크게 쓴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다. “우리 광고를 보고 제품을 한번 구입한 소비자들 중 상당수가 앞으로 계속 우리 제품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고비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큰돈을 꾸준히 벌어들일 것이다.” 조지 클루니가 “what else?”라고 묻는 모습의 이면에는 이 회사가 커피 품질에 정말 진심이라는, 그래서 소비자를 오랫동안 붙들어놓을 자신이 있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독점적 경쟁시장의 브랜드 광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주택 전세 계약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집주인 입장에서 볼 때 계약의 안정성이나 거래비용 절감 등의 이유에서, 자기 집에 좀 오래 머물러 있을 세입자를 찾고 싶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세입자는 누구나 “우리는 오랫동안 눌러 살 예정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므로, 세입자의 말 자체는 신뢰하기 어렵다. 이럴 때 그 집에 세들고 싶은 사람이 자기가 정말로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증명하는 좋은 방법은 처음 입주할 때 상당한 돈을 들여서 인테리어를 고치는 것이다. 깨끗한 벽지를 새로 바르고 부엌과 화장실도 산뜻하게 수선하고. 잠깐 머물다 갈 사람이라면 셋집에 돈을 그만큼 들일 이유가 전혀 없으니, 이렇게 인테리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세입자의 장기 거주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광고의 세계에서든 전세 계약에서든 장기간에 걸쳐 이윤이나 효용이 꾸준히 발생하는 시장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나는 뜨내기가 아니다’ ‘나는 진심이다’, 이런 신호를 바르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돈이 진심을 전해주는, 상당히 드문 경우가 아닐까.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포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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